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매거진

터닝메카드를 찾는 사람들

댓글 2 좋아요 0

요즘 아이 기르는 부모 사이에 ‘터닝 메카드’를 모르면 간첩이다. 미니카가 자성이 있는 카드를 만나면 순식간에 로봇으로 변신하는 터닝메카드는 그 종류만 16종이고, 3가지 색상을 적용하면 총 48가지까지 늘어나는데 이게 묘한 소유욕을 자극한다.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이 안달이 나서 터닝메카드 노래를 부르는데, 정작 장난감을 구할 길이 요원하다.


제작사에서 중국과 베트남에 있는 공장을 풀가동하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폭증하는 수요 때문에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해 품귀 현상까지 일고 있다. 상황이 꽤 심각해 터닝 메카드 앞에서는 대형 마트 삼고초려도, ‘따따블’ 웃돈도 다 소용이 없다. 대형 마트나 장난감 가게 앞에 수백 명이 줄을 서서 번호표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광경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터닝메카드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장난감 회사를 일으켜 세운 효자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새것 같은 중고’ 터닝메카드도 정가의 3배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심지어 중국산 짝퉁까지 등장했다.

 



아이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부모를 울리는 상술은 도가 넘었다. 보다 못한 아빠 중에는 지금 보채는 아이 때문에 너무너무 힘든 아빠들한테만 마트 가격으로 판다며 어쩌다 몇 개 갖고 있던 터닝메카드를 ‘기증’하다시피한 게시물을 올려 감동을 준적도 있다. 우리 집에는 모두 다섯 개의 터닝 메카드가 있다. 5배 가까운 바가지 요금에 것도 있고, SNS로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지인에게 뜻밖의 선물을 받기도 했다. 어쨌든 이 정도 성의면 만족할 법한데, 아이는 영 내 마음 같지가 않다. 여섯 개 있는 친구가 부럽고,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주인공 ‘에반’이 없어 못내 아쉽기만 한 눈치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터닝메카드를 좋아할까? 애니메이션이 너무 재밌어서?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만화 좀 보는 우리 집 아이도 금세 질릴 정도로 뻔한 스토리고, 애니메이션의 수준도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다. 반면 변신 장난감은 무릎을 칠 만큼 정교하고 멋지다. 아이는 물론 지갑을 여는 부모의 소유욕까지 제대로 자극한다. 사실 아이 키우는 부모에게 이런 일은 결코 낯설지 않다. 기획 단계부터 애니메이션과 함께 패키지로 개발되는 캐릭터 상품이나 완구 제품으로 2013년 ‘또봇’과 2014년 ‘파워 레인저’가 대박이 났다.


결국 옳고 그름이 아닌 현명한 소비의 문제이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터닝메카드에 빠져들수록 부모도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우리 집에는 부모 욕심에 사놓은 장난감이 창고 한가득이다. 그 중에는 아이가 한참 더 커야 탈 수 있는 성인용 퀵보드도 있고, 나도 어려워서 맞추지 못하는 퍼즐 조각도 있다. 아이 마음에 쏙 들 거란 예상은 적중하기도 하지만 빗나갈 때도 많다. 아이는 퍼즐 맞추기에 무관심하지만 맞춰 놓은 퍼즐을 망가뜨리는 데는 선수다. 나무로 만든 비싼 자동차 모형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집안에 뒹구는 장바구니는 광적으로 집착한다. 카드 할부로 산 고가의 어린이 자동차보다 다 찌그러진 싸구려 플라스틱 야구 방망이를 더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16가지 터닝 메카드를 다 사주는 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일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다 못해 충동구매를 일삼는 아빠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평소 아이에게 미안한게 많은 아빠일수도록 그렇다.





터닝메카드를 찾는 사람들 글을 쓴 정석헌 대표는 남성 매거진의 잘나가는 에디터에서 ‘초보 아빠’가 되어 육아를 전담했다. 그 이야기는 <아빠도 때론 어부바가 힘들다>에 담겨있다. 현재 출판사를 운영하며 대중문화 속에서 엿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육아 현실을 <맘&앙팡>에서 풀어내고 있다. 



일러스트 박새미 | 담당 박효성 기자 

2015년 10월호
  • 페이스북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