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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아빠가 지은 우리 집이 제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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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는 무화과 나무와 땔감 타는 냄새가 걸려 있었어요. 집주인은 오랫동안 그 냄새들을 잊어버리고 살아왔지요. ‘이상하다. 나는 왜 그동안 집이 정겹다는 걸 잊고 있었을까?’” 그림책 <집이 날아가 버렸어요>의 한 구절이다. 과연 우리 집 공중에는 어떤 냄새가 걸려 있을까. 우리 집은 어떤 빛깔일까. 이달 ‘우리 집’을 주제로 일곱 가족의 집을 찾았다. 엄마 아빠가 손수 지은 집, 아이를 위해 찬란한 빛을 선물한 집, 아이들에게 소풍 같은 일상을 만들어주는 마당 깊은 집, 불필요한 짐을 덜고 사람과 반려견이 주인이 되는 한옥집, 엄마 취향, 아이 취향이 존중받는 집 그리고 아이와 식물이 함께 자라는 집까지 저마다 이야기가 풍성하다. 아이가 자라는 집을 맴도는 행복한 냄새에 함께 취해보길 바란다.


결이네 가족은 10년 동안 10번의 이사 끝에 양평군 지평면에 집을 지었다. 아이 이름을 딴 ‘결이고운가’에 머무는 이 가족은 하루하루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행복하다.





✎ 엄마 아빠가 지은 우리 집이 제일 좋아요
‘다다다다.’ 경쾌한 종종걸음 소리를 들으며 엄마 아빠는 휴일 아침을 맞이한다. 이불에 몸을 반쯤 묻고 있던 아빠는 “귀여워”라는 탄성을 내며 일어나고, 엄마는 ‘역시 집 짓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맞는다. 이사 전에 살던 아파트였다면, 아이가 쿵쾅거리는 것이 마냥 귀엽고 예쁘게 느껴졌을까? “수리산으로 둘러싸인 환경이 좋아서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을 것 같아 산본으로 이사했는데, 아파트 층간소음이 심했어요. 평소 스트레스가 많아 아이 발소리가 조금이라도 크게 느껴지면 조심시키느라 바빴죠.” 결이네 가족은 마음에만 품던 너른 마당이 있는 박공지붕 단층집의 꿈을 이루었다. 달라진 집 풍경은 아이 그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네모반듯한 건물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이 여럿 등장하는 그림이 아니라 책을 펼쳐 엎어놓은 모양의 박공지붕 아래 단란한 가족이 산다. 역시 박공지붕인 강아지 집과 어린 강아지까지 그려 넣어야 비로소 그림이 완성된다. 결이는 놀이터에 가지 않아도 동화를 듣거나 혼자 종알거리면서 3~4시간을 노는 아이다. 그런데 동네 어귀에 있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면서 엄마 아빠는 아이 얼굴을 볼 틈이 줄었다. 유치원 다녀오는 길에 친구들과 놀고, 하원 후에 친구 집에 가서 놀다 보니 세 식구가 얼굴 맞대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엄마는 친구와 노는 것도 좋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도 중요하다는 걸 설득해 아이와 약속장을 만들었다.





✎ 자연을 벗 삼은 작은 집의 행복
엄마는 부엌 수납장 앞 창문 너머로 풍경을 바라보고, 작은 텃밭을 가꾸고 집 안팍 곳곳을 꾸미면서 자연을 벗 삼은 전원생활을 만끽한다. “여행할 때 네덜란드에서 작은 단독주택에 머문 적이 있어요. 창을 열면 풀 냄새가 새어 들어오고 작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죠. 상쾌한 공기만 마셔도 저절로 행복했어요. 집은 머무는 동안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집은 눈뜰 때, 창 너머를 바라보며 사색할 때,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와 강아지를 볼 때 매 순간 행복해요.” 아이는 ‘나와서 같이 놀자’는 강아지의 간절한 눈빛에 이끌려 마당에 나갔다가, 잔디 사이에 숨은 ‘수정’을 찾으며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작은 돌멩이에 관심 갖기 시작해 도서관에서 광물에 대한 책을 빌리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결이의 일곱 살 인생 최초의 어린이날 선물을 현미경으로 정했다. “아이가 집 주변에서 관심사를 찾고 자연스럽게 확장되기를 바라요. 세심하게 관찰하고 작은 변화도 알아차릴 줄 아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가 텃밭에서 발견하지 못한 새싹을 발견해 알려주면 부모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맙죠. 집을 짓고 부모인 저희가 조금씩 변하듯, 아이의 작은 변화를 발견하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에요.”





✎ 셋이 똘똘 뭉쳐 써가는 가족의 역사
결이네 가족이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 것은 아빠 정병수 씨의 퇴사가 계기였다. 아빠는 어느 날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스위스 등지로 훌훌 여행을 떠났다. “매일 출근하고 야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관성에서 벗어난 게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어요. 여행하는 동안 기존 삶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을 경험했죠. 10개월 동안 잘 놀고 퇴직금이 한 푼도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집을 지었어요. 삶을 대하는 자세도 조금 바뀐 것 같아요.” 결이고운가는 엄마 아빠의 손이 안 간 곳이 없다. 건축의 기초지식이 전혀 없는 엄마 아빠가 직접 설계하고, 집이 세워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지금은 그 집을 손수 꾸며가며 살고 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지은 집을 무척 좋아한다.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엄마가 만들어준 장난감을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평소에도 집 이야기를 많이 한다. 유치원에 가면 주말에 아빠가 볶음밥을 해준 이야기, 엄마가 장난감을 만들어준 이야기, 강아지 짱똘이 이야기, 마당에서 수정 찾는 이야기를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들려주느라 여념이 없다. 엄마 아빠와 자동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저 큰 집 예쁘다. 그런데 우리 집도 예뻐요. 우리 집이 제일 좋아”라고 말해 집을 짓고 꾸미느라 정성 들인 엄마 아빠를 감동시킨다. “엄마 아빠가 만든 것에 애착을 갖고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것 같아요. 아이가 집 이야기를 할 때마다 뿌듯해요.”

결이고운가는 독립적인 공간이되 단절되지 않게 설계했다. 엄마 아빠의 침실, 아이 방, 거실, 부엌, 다락 등은 저마다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수시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열려 있다. 거실은 엄마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공간이고, 부엌은 엄마의 공간이다. 다락은 결이 혼자 레고를 만지고 노는 공간이었다가 아빠와 함께 노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빠는 주로 부엌에 붙어 있는 식탁에 머문다. “집에 머무는 시간, 엄마 아빠 아이가 함께하며 서로에게 집중하는 동안 가족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의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아이가 자라서 유년의 집을 언제나 편안하고 따뜻했던 곳으로 기억하길 바랍니다.”


✓ ‘결이고운가’를 완성하기까지

D+1 ○ 토지 매입
양평 살구마을에 전원주택 단지를 분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들이 삼아 구경 갔다가 덜컥 계약했다. 토목공사가 마무리된 400m2(120여 평) 땅을 1억 초반에 매입했다. 아빠가 퇴사하고 몇 달 동안 가족여행을 한 뒤라 통장 잔고는 ‘0원’이었지만, 가족이 거주하던 산본의 20평대 아파트가 있어 실행 가능했다.

D+30 ○ 설계하기
건축사무소에서 설계 도면을 받으려면 600만~3000만원이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이 어떤 모양이면 좋을까’를 생각했다. 작은 집, 박공지붕, 단층집, 작은 마당 등을 떠올리며 엄마 유지영 씨는 매일 머릿속으로 집을 세우고 허물었다.

D+90 ○ 도면 그리기
아빠가 ‘스케치업’이라는 도면 그리는 프로그램을 알아왔다. 처음에는 엄마가 종이에 그리고 설명하면 아빠가 프로그램으로 옮겨주는 방식으로 도면을 그렸다. 말도 안 되는 설계도를 그려놓고 매일 설명하기 어려웠던 엄마는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워 설계 도면을 완성해갔다.

D+150 ○ 시공하기
건축 관련 지식 없이 시작한 설계는 시공비를 고려하지 못했다. “입면이 많아 외관이 화려한 건물은 시공비가 많이 든다”는 시공사 사장님의 조언을 듣고 외관이 단순하고 실용성 있는 북유럽식 설계도를 완성했다. 적은 예산으로 시작한 건축이어서 최대한 절약했지만 총 건축비는 당초 예상했던 2억원대 초반을 훌쩍 넘겼다.

D+242 ○ 완성하기
집이 세워진 다음에도 엄마 아빠는 집 곳곳을 손수 만들어가고 있다. 부엌 수납장과 식탁, 마당에 놓은 큰 식탁과 의자, 강아지 ‘짱똘’의 집, 넓은 마당에 추가 시공하는 데크까지 셀프 인테리어 중이다.


사진 한수정, 이지아, 김남우 진행 박선영, 한미영, 위현아, 김경민 기자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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