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다반사
기특한 쌀과의 전쟁
봄 철 옷가지들을 정리하느라 유난히 분주했던 하루,
어느새 일곱시로 향하는 시계를 보고는 겨우 몸을 일으켜 저녁을 지으려고 할때였습니다.
여느때처럼 쌀을 씻으려고 씽크대에 섰지요.
눈치빠른 아들이 다리 사이로 왔다갔다하며 이 엄마의 관심을 끌기위해 갖은 애를 쓰더라구요.
내심 엄마의 분주한 하루탓에 유난히 심심했을 아들이 안스럽게도 느껴졌지만
당장 차려야 할 저녁상을 두고 마냥 그 요구를 다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별 반응이 없는 엄마를 향해 답답했던지 아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엄마, 힘들어요?"
"응"
"쌀 씻는거 도와드릴까요?"
"가만있는게 도와주는거야, 저기 가서 좀 놀아."
"엄마!"
"왜, 또......"
"쌀도 세탁기로 씻으면 안되나요?"
"......"
"내 유치원 옷도 세탁기가 깨끗하게 씻어주잖아요?
그러니까 쌀도 세탁기로 씻으면 엄마가 힘안들게 씻을 수 있잖아요."
말문을 막아야 겠다는 생각에만 급급했던 저는
내일의 더한 괴로움을 그때는 모른체 엄청난 말을 해버렸습니다.
"그래, 쌀도 세탁기가 씻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정말 엄마가 편할텐데 말이지,
자 이제 엄마는 바쁘니까 저기 가서 놀아요."
정말 결정적인 이 한마디 탓에 저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쌀과의 전쟁을 치뤄야 했습니다.
이튿날 밀린 빨래를 하느라 아침부터 설친것이 또 문제였습니다.
어제의 피곤함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분도 한결 나아졌고
정말 빨래가 잘 마르겠구나 싶은 생각에 평소와 달리 부지런을 떨었는데
그 결과가 참으로 황당하였으니 그 웃지못할 상황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딩동딩동 소리와 함께 세탁기의 동작이 멈추는 소리가 들렸고,
큰 빨래통을 앞에 다 놓고 세탁기 문을 연 저는 옷 사이사이로 묻어있는 하얀 알갱이들이
쌀가루인것을 알고는 정말 기절할뻔 했습니다.
어찌하여 빨랫감과 쌀이 같이 세탁이 되어 있는건지,
처음엔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아 너무도 놀랄 따름이었지요.
죽을 끓이면 좋을만큼 쌀은 적당히 잘 갈아진 상태였고,
옷과 양말 수건...... 모두 쌀과 잘 버무려진 모양새였습니다.
그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어제 저녁 아들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제가 댓구한 말까지......
바로 아들의 사고 현장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주방에 없는 동안 베란다로 나가 세탁기로 쌀을 씻을 생각이었겠지요.
제법 많은 양의 쌀을 넣고는 미처 동작을 누르지 못한 상태로
다음날 제가 빨랫감을 넣고 돌려버린 것입니다.
아들과 저의 합작품쯤 된다면 말이 될까요?
어이없어 할 겨를도 별로 없었습니다.
우선 빨래를 쌀로부터 분리를 해야 했구요,
세탁조에 깔려있고 사이사이에 붙어있는 쌀가루들을 다 빼내야 했구요,
베란다 바닥으로 향해 떨어진 쌀들을 모두 다 치워야 했으니까요.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린 옷과 양말을 입고 신을때마다 소매끝으로 떨어지는 쌀 알갱이와
양말 안으로 아직도 붙어있는 쌀가루탓에 신었다가 다시 벗어 털어내고 신는 수고로움까지.......
저의 가족은 며칠을 그렇게 쌀과의 전쟁을 치뤄야 했습니다.
남편은 엄마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기특하다며
양말을 뒤집어 털어 내면서도 연신 웃음만 짓더라구요.
쌀뜨물이 합쳐졌으니 빨래가 더 깨끗하게 빨려졌을거라며 한술 더 뜨면서 말입니다.
아무튼 아들은 엄마를 도우려는 마음을 더 많이 인정받아
대형사고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넘어 갔습니다.
세탁기에는 절대 쌀을 넣어 씻는 것이 아님을 여러차례 교육을 받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지요.
항상 엉뚱한 일로 사고의 경중을 가늠하게 하는 저의 아들 덕에 큰 한숨을 몰아 쉴때도 있지만
문득 이런 말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present !´ 명사로 ´선물´ 이란 뜻으로 잘 알고 있는 영단어입니다.
또한 현재나 지금, 오늘날의 뜻을 갖고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지금이 바로 최고의 선물´ 이라는 말,
용기와 사랑으로 오늘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또한번 크게 웃어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