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작가



등 껍데기가 최고야!
“훔냐, 이야, 으랏차차!”
간 밤에 잘 잔 소라게가 기지개를 폈어요. 바다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에 오늘도 소라게는 두 눈이 간지러워 눈을 꿈뻑꿈뻑거리며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지요.
“오늘도 바다 냄새가 상쾌한 걸. 오늘은 누구랑 놀지?
소라게는 곰곰이 생각했어요.
“아, 그래. 저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면 분명히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야. 많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소라게는 신이 나서 울퉁불퉁한 바위를 단번에 올라가려고 달려갔어요. 바위 위를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자꾸만 등 뒤에서 “탁, 탁”하는 소리가 났어요. 소라게 등 뒤에 붙어 있는 등 껍데기가 자꾸만 자신의 다리를 치는 소리였어요.
“나도 이 등 껍데기만 없었으면 저 칠게처럼 바위를 더 쉽게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칠게가 너무 부러운 소라게는 자신의 등 껍데기에서 나와 더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로 결심했어요. 등 껍데기를 벗어버린 소라게는 한결 몸이 가벼워져 바위도 단번에 올라갔어요. 그러고서는 저 멀리 갯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을 보고 갯지렁이와 놀기 위해 소라게는 또 열심히 그리로 달려갔어요. 갯벌 진흙의 촉감이 부드럽고 푹신푹신해서 소라게는 신이 났어요. 이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갯지렁이가 소라게한테 말했어요.
“소라게야 등 껍데기는 어디에 두고 이렇게 돌아다니니? 매우 즐거워 보이는구나.”
“등 껍데기에서 벗어나니까 몸이 이렇게 가벼워졌어.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몰라. 갯지렁이야, 네가 사는 곳에 가서 같이 놀면 안 될까?
“그래, 그렇지만 내가 평소에 있는 곳은 갯벌에 나 있는 깊은 구멍 속이야. 그래도 괜찮다면 같이 가보자.”
신이 난 소라게는 갯지렁이를 따라 깊은 구멍 속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얼마 들어가지도 않고 소라게는 구멍 속이 깜깜하고 무섭다며 갯지렁이를 뒤에 두고 먼저 나와 버렸어요.
“휴, 다행이다. 갯지렁이는 저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잠을 자는 구나. 다시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한숨을 쉬며 갯지렁이는 다른 친구를 찾아 바닷가 더 안쪽까지 걸어갔어요. 이번에는 몸이 미끌미끌한 낙지를 만났어요. 얕은 바닷물에서 첨벙첨벙거리며 물을 튀기고 있는 낙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소라게가 물어 보았어요. 그랬더니 낙지가 말했어요.
“응, 소라게야, 난 햇볕을 많이 쐬어서 몸이 마르게 되면 숨을 쉴 수가 없단다. 그래서 이렇게 자주 몸에 물을 뿌려주는 거야.
낙지의 물놀이가 재미있어 보여서 소라게도 바닷물에 폴짝 뛰어 들어갔어요. 그런데 바닷물이 너무 차갑고 깊어서 소라게는 쉽게 헤엄을 칠 수가 없었어요. “꼬로록, 꼬로록”하고 바닷물을 많이 마신 소라게는 낙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휴,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했어. 다음부터는 너무 깊은 물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아야지.”
몸이 많이 지친 소라게는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잠시 쉬기 위해 큰 바위를 찾아 걸어 갔어요. 숨을 한번 크게 쉬고 햇볕을 피해 바위 옆으로 바짝 다가갔는데 그곳에 여러 종류의 고둥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소라게는 고둥을 가만히 살펴보면서 생각했어요.
‘정말 보잘 것 없이 생겼네. 하루 종일 바위에만 붙어있고, 빨리 걷지도 못하면서 매일 심심한 하루만 보내겠구나. 나는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매일매일 즐겁게 놀면서 지낼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는 소라게는 바위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붙이고 잠이 들었어요. 해가 뉘엿뉘엿 지고 곧 밤이 왔어요. 갯벌의 밤은 낮보다 훨씬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어요. 넓디넓은 갯벌을 혼자 돌아다니느라 지친 소라게는 잠에서 쉽게 깨어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밤하늘에 뭉게뭉게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까만 구름이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어요. “똑똑똑” 머리에 비를 맞은 소라게는 급히 잠에서 깨어 비를 피하기 위해 정신 없이 돌아다녔어요.
“내가 너무 깊게 잠이 들어버렸구나. 이를 어쩌지? 앞도 안보이고, 배도 고프고, 몸도 춥고, 더 이상 힘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아. 밤새 찬바람을 많이 맞았나봐.”
소라게는 비를 피하기 위해 갯지렁이와 낙지한테 도움을 청하러 가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어요. 소라게는 축 쳐진 몸을 이끌고 차가운 비를 피하려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일어설 힘조차 없었어요. 그러고서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그대로 잠이 쓰러져버렸어요.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요? 소라게는 따가운 햇볕에 눈이 부셔서 겨우 눈을 뜨고 일어났어요. 밤새 비를 맞아서 많이 아플 줄 알았던 소라게는 이상하게도 몸이 가뿐하고 가벼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어, 이상하다. 어제 분명히 비를 맞으며 쓰러졌었는데 왜 이렇게 몸이 가볍고 기분이 좋지?”
한참을 생각하던 소라게는 순간 자신의 등 뒤가 묵직하다는 것을 깨닫고 뒤를 돌아보았어요. 그랬더니 소라게의 등에는 어제 아침까지 지고 있었던 등 껍데기가 있었어요. 밤새 소라게는 등 껍데기 안에서 비를 피하며 안전하게 쉴 수 있었던 거예요. 비를 피하며 돌아다니다가 결국 소라게는 자신이 버렸던 등 껍데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어요.
“그래, 그래도 이 등 껍데기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껏 이렇게 편하게 자면서 살 수 있었던 거야. 다시는 등 껍데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테야.”
이렇게 속으로 다짐하고서 소라게는 등 껍데기를 자세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내 등 껍데기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가만 내가 어디서 봤더라?’
자신의 등 껍데기를 한참을 보며 생각하던 그 순간 소라게는 크게 놀라고 말았어요. 어제 바위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고 보잘 것 없이 가만히 있었던 고둥이 바로 자신의 등 껍데기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기 때문이에요. 죽어서도 자신의 껍데기를 다른 이에게 내어주는 고동을 생각하며 그런 고동을 하찮게 여겼던 소라게는 자신이 매우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소라게는 고둥이 남겨 준 자신의 등 껍데기를 쓰다듬으며 다른 친구를 위해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어요. 소라게는 등 껍데기를 진 채로 영차영차 저 큰 바위 위를 힘차게 올라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