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작가
연지의 고까신
‘오른발 왼발, 고까신이 위로 아래로...’
나들이를 나온 분홍 고까신은 오늘도 신이 났습니다.
“우리 연지 잘도 걷네. 하나 둘, 하나 둘.”
할머니와 함께 엄마를 마중 가는 길은, 고까신만큼이나 연지도 신이 납니다. 엄마를 만날 생각에 서툰 걸음을 재촉하느라 자꾸 넘어지지만
“으 차” 다시 일어나서 두 손을 앙 쥐고 걷는 씩씩한 연지.
“왼쪽아, 너 자꾸 똑바로 걷지 않을래? 연지가 너 때문에 넘어지잖아.”
아까부터 연지가 넘어지면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왼쪽 고까신을 바라보는 오른쪽 고까신.
오른쪽 신은 연지가 넘어지는 것이 왼쪽의 탓 인 냥 핀잔을 합니다.
왼쪽신은 왜 자기 때문이라고 하는지 화도 조금 났지만. 연지의 걸음이 익숙해지면 곧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화를 내기보다는,
“알았어. 내가 더 조심할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둘은 꼭 붙어있는 단짝 오른쪽왼쪽 고까신이지만, 이렇게 오른쪽신은 불평을 부리는 게 익숙했습니다.
그런 오른 신을 늘 감싸주는 건 엄마같이 의젓한 왼쪽 고까신이었지요.
얼마안가 지친 연지는 할머니의 따스한 등에 업혀 엄마냄새 같은 스웨터의 포근한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듭니다.
고까신도 지쳤는지 솔솔, 연지 발에 동동, 매달려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였습니다.
“얘? 너 여기서 뭐하니?”
콕콕, 코-옥... 무언가 찌르는 느낌에 잠에서 깨보니 글쎄 아기 참새가 분홍오른쪽 고까신의 앞코를 쪼며 묻고 있었습니다. 이제 보니 오른쪽 고까신은 연지발이 아닌 차가운 땅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해님은 고까신이 잔다고, 말도 않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고, 어느새 어둑한 저녁이었습니다.
연지도 없고 짝꿍인 왼쪽 고까신이 없으니 오른쪽 고까신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와락 쏟아질 것만 같은걸 간신히 참고 있었습니다. 저녁바람이 제법 쌀쌀합니다. 추워지니 더욱 연지생각이 났습니다. 소중한 자기 신발이라고 두 손에 꼭 쥐고 집안으로 갖고 들어가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아두던 그리운 연지.
추워서 몸을 웅크리다보니 고까신의 찍찍 이가 떨어진 것이 눈에 보입니다. 동동 매달려있던 오른쪽 고까신이 떨어진걸 보니 잘, 안 붙어있던 찍찍 이가 말썽이었던 모양입니다.
참새는 자꾸 묻다가 아무 말도 없이 울 것만 같은 고까신을 두고 휑하니 저녁을 먹으러 가버렸습니다. 조금 있다가 동네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나와 고까신을 보고 묻습니다.
“넌 여기 왜있냐?,왜 혼자야? 니들은 꼭 둘씩 다니잖아. 둘이 싸웠니? 말 좀 해봐.”
고양이도 묻다 지쳤는지, 아니 배가고파진건지, 생선냄새가 나는 어느 집으론가 훌쩍 달려가 버립니다.
고까신은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울고만 싶었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혼자 있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연지도 그리웠지만 늘 구박하던 단짝인 왼쪽 고까신이 너무 그리워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내가 너무했어. 그런데도 나한테 화도 안내는 내 짝꿍 왼쪽 고까신..,’
가만히 있으면 있을수록 춥기만 하고, 그리운 가족들과 짝꿍생각에, 오른쪽 고까신은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그래, 이제 다시 내게 말을 거는 친구가 있으면 나도 내가 누군지 얘기하고 도움을 청해 봐야지.’
떨어진 찍찍 이도 잘 붙이고 이젠 눈물도 씩씩하게 닦아냅니다. 그리고 저 멀리 누군가 오는 인기척을 느끼곤 귀를 쫑긋이 세워봅니다. 동글동글한 작은 해님이 멀리서부터 정겹게 다가옵니다. 어둠속에서도 저 불빛을 알아보는 오른쪽 고까신. 그건 바로 연지할머니의 손전등 불빛이었습니다. 침침한 눈이지만 하나라도 놓칠세라 곳곳을 비추고 계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나를 찾고 계시는 구나. 이제 곧 내게로 오시겠지?’ 고까신은 힘이 났습니다.
힘은 약하지만 제법 제자리에서 위로 아래로 앞코와 뒤축을 들어 소리도 내봅니다. 이윽고 할머니가 다가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태어나 제일 속상했던 순간이 태어나 가장 기쁜 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야호~할머니! 저 여기 있어요.’
드디어 할머니의 해님 같은 손전등이, 그리고 할머니의 따스한 눈빛이 고까신을 찾아냈습니다. 고까신만큼 할머니도 기쁩니다.
“우리 연지가 집에 도착해서 잠에서 깨자 제일 먼저 찾는 게 너였단다. 여기 떨어뜨리고 가서 미안 하구나 신아. 이제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들리진 않겠지만 오른쪽 고까신은 할머니를 보며 얘기합니다.
“아니에요, 불평하느라 찍찍 이도 떨어져 있는 걸 모른 제가 잘못이었어요. 이제 친구에게 불평도 안하고, 연지 발에 잘 붙어 있을게요.”
할머니는 먼지를 톡톡 털어 후후 불어 스웨터 속에 넣어 고까신을 안아주십니다.
고까신도 할머니의 스웨터냄새가 좋았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따스합니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다시 따뜻한 물을 수건에 적혀 고까신들을 닦아주고 곤히 자고 있는 연지의 머리맡에 놓아주셨습니다.
‘우리연지, 정말 좋아하겠구나. 아침밥도 안 먹고 나들이 나가겠다고 하면 어쩌누?’
할머니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집니다. 오른쪽고까신이 왼쪽 고까신에게 어떻게 사과하며 좋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오른쪽 고까신아, 어디 갔었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다고.”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는 왼쪽 신이 오른쪽 신을 먼저 안아줍니다.
“아니야, 내가 너한테 불평하고 나 혼자만 생각했더니 오늘 이런 일이 일어난 거 같아.
이제부터는 너를 더 소중히 생각하고 불평하는 나쁜 습관은 버리도록 할게.“
더욱 돈독해진 우정을 느끼며, 오른쪽 왼쪽 고까신은 연지를 바라보며 잠이 듭니다.
지금 이 순간 연지는 꿈속에서 고까신을 신고 아장아장 걷고 있습니다.
고까신을 고이 신고 엄마랑 할머니의 손을 양손에 잡고, 봄의 들판을 마음껏 거닐고 있습니다.
꿈에서 깨어서 오른쪽 고까신이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 연지는 아마도, 고까신을 신고 하늘을 펄펄 날 수 있을 정도로 신이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