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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작가

kyo3002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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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와 황금이

초록이와 황금이

1.
낡은 크레파스 통 속에는
몽당이 되어 버린
초록이와 황금이가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초록아! 초록아! 나에게 와서 푸른 떡잎 하나를 그려주렴?˝
초록이의 주인인 나영이가 부탁을 합니다.
˝나영아! 미안해. 나는 너의 부탁을 들어 줄 수가 없어!˝
초록이는 언제부턴가
작아지는 자신의 몸이
언젠가는 세상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
어느 날, 속상해하는 초록이에게 황금이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초록아! 초록아! 기억하니? 초록이 니가 지난 여름 푸른 들판을 그렸던 일 말이야?
초록이도 그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나영이 할아버지의 넓은 들판을
온통 푸른색으로 칠했던 일말입니다.
나영이 할아버지와 초록이는
여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초록이의 몸은 점점 작아졌고,
나영이 할아버지의 등도 점점 굽어졌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온통 진초록색으로 변했지요.
그리고, 나영이 할아버지와 초록이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신기하게도 푸른 들판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의 풍선이 되어
높고 파란 가을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3.
지금 초록이의 눈에는
온통 황금이 되어 버린 가을 들판과
나영이 할아버지의 흐뭇한 미소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들판은 커다란 황금의 라디오가 되어
풍년을 맞이한 사람들의 행복한 소식을 한 아름 전해 줍니다.
“황금아! 지난 여름 내 몸이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다가 가는 걸 보고,
누군가를 위해 작아지는 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내가 그 걸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야”
이제 초록이는 더 이상 작아지는 일이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습니다.
황금이도 이제 몸이 작아질 준비를 합니다.
가을걷이를 해야 하는 나영이 할아버지를 도와,
황금 들판을 더욱 짙게 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4.
낡은 크레파스 통 속
몽당 색연필 두 자루
초록이와 황금이는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한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계절들을 선물하고
미소 뛴 얼굴로 누워있습니다.

ㅡㅡㅡㅡ 2014년 12월호의 동화 <나영이의 네번째 크리스마스>의 작가 김윤옥입니다.
그 당시 네살이었던 나영이는 여섯살이 되었고, 저도 이제 일을 다시 시작한 지 이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나영이는 그 사이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겼고, 한글을 조금씩 읽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나영이에게 한글을 좀 더 가르쳐 줄 생각입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나영이가 제가 쓴 동화 <초록이와 황금이>를 스스로 소리내어 읽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때 내 딸 나영이가 소멸의 아름다움과 가을의 풍성함을 그리고 값진 노동이 가져오는 보람을 마음으로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영맘 김윤옥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