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근주가 낯가림이 좀 있어요. 그리고 얘가 기질적으로 보니까 불안도 높고 긴장도 많이 하는 아이예요. 그리고 낯가림을 하는 아이들은 특히 사람이 보는 이 시각, 쳐다보는 거에 굉장히 예민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은... 얘도 예쁘게 생겼잖아요. 주변 지나가는 사람이 어머, 너 예쁘다, 그러면 쳐다보지 마세요, 이러는 아이거든요. 그래서 아주 민망하게 하는 아이. 주시불안도 있고 좀 그래요. 그러기는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이 아이는 특징이 자기가 조금 확인을 해서 안전하다고 느껴지면 훨씬 편안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아이는 보니까 낯가림도 늘 보던 익숙한 사람은 훨씬 낫고요. 그러니까 아빠는 매일 보는 사람이니까, 또 엄마는 늘 같이 있는 사람이고. 그리고 유치원도 매일 가니까 가기 전에는 분리불안이 있지만 가고 난 다음에는 잘 지내는 것 같고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는 본인한테 생명을 주신 분이지만 가끔 보거든요. 그러니까 개념으로는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낯가림이 있는 아이들은 가까이 보는 옆집 삼촌이 나아요, 어떻게 보면. 더 가까운 거거든요. 그러니까 새로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을 이렇게 보면 굉장히 이렇게 낯설고 긴장을 하는 거죠. 그래서 이게 긴장을 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이 아이는 어떻게 보면 탐색할 시간을 주는 게 나아요. 그런데 대개 엄마들이 민망하잖아요. 아이가 낯을 너무 많이 가리면. 그러면 자꾸 이렇게 아이한테 푸시를 해요. 인사해, 빨리 들어가, 너 뭐해, 이러면
아이는 어떻게 보면 탐색할 시간이 없이 그 자리에서 딱 멈추거든요. 경계하고 있는, 그런 유형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대개 아이들이 분리불안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사실은 어떻게 보면 정상적 과정이에요. 아무나 보고 따라가면 되겠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자기를 키워주는 부모 내지는 1차 양육자와 떨어질 때 불안을 느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이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 꼭 필요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기전이에요. 꼭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만 아이의 발달을 보면 보통 돌이 되면 예를 들어 뭘 보여줬다가, 볼펜을 보여줬다가 눈 앞에서 딱 감추면 그건 이 세
상에 존재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돌이 지나면 아이들은 아, 어디인가에는 존재하고 있는데 숨겼구나를 알아요. 그래서 뒤에 와서 찾거든요. 그 다음에 두 돌이 되면요, 아이들은 엄마가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어디인가에 있다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엄마가 안 보이면 찾으러 다녀요, 방방이.
세 돌이 지나면 엄마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엄마와 나와 사랑하는 이 마음이 내 마음 안에 멘탈이미지라고 해요. 심상으로 남아 있다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이게 잘 발달이 되면 떨어져 있을 때도 하나도 불안하지 않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 의심하지 않아요. 그런데 애들뿐만 아니라 이런 발달에 문제가 있는 어른들이 있어요. 그럼 어른이 되면 남편이 회사에 가 있으면 자꾸 의심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