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순간들이 있는데. 첫번째는 아이가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안경을 썼을 때, 눈이 굉장히 나빠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아이를 키워보신 분은 다 알 거예요. 우리 아이가 평생 갖고 가야 될 핸디캡을 제가 알았을 때 굉장히 충격이 됐었어요. 내 아이가 7살 때부터 안경을 쓰다니, 이런 충격이 한 번 있었고. 초등학교 한번은 전교등수 같은 반등수를 받아왔습니다. 이게 지금 반에서 받는 등수일까, 전교에
서 받는 등수일까? 제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그러한 순간들이 몇 개 기억이 나는데. 이건 제가 기억에 남는 거고 사소한 것들을 하면 굉장히 많겠죠. 우리가 생각을 해 볼 때 내가 아이를 낳을 때 나는 정말 완벽한 아이를 낳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한테 하나씩, 둘씩 뭔가 결함, 부족한 점이 발견될 때마다 굉장히 실망하고 좌절하고 조금 심하신 분들은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겪기 전에는 상당히 이상화된 관계죠. 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중에 키가 안 클 수도 있어. 청소년기가 되면 여드름이 벅벅 날 거야, 이렇게 기대하고 아이를 키우는 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처음 시작되는 이 관계는 매우 고유하고 유일하고 이 관계는 굉장히 이상적으로 서로 설정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아이도 부모에게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하나씩 이 이상들이 깨집니다. 그런데 뭐 깨질 때마다 다 하는 걸 합쳐보면 결국 부모는 아이에게 완벽한 아이를 기대해요.
우리 아이가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날씬하고 물론 똑똑하고 사회성도 좋고 남도 잘 배려하고 부모한테 효도하는... 다 합치면 완벽 맞죠? 그런데 나는 이 정도는 포기할 수 있어. 이렇게 처음부터 생각하고 시작하는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삶을 살면서 하나씩 깨지는 거죠. 그런데 이게 깨어지는 그 순간마다 사실은 부모의 힘이 발휘되어야 되는데. 이게 사실 현실이죠, 하나씩 깨어지는데.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거냐 했을 때 저는 입장을 좀 바꿔보면 될 것 같다라고
생각이 돼요. 그러니까 내가 얘를 끝까지 믿어주고 밀어주면 될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고
내 아이의 역량이 여기까지인데 내가 좀 받아들여야 되지 않나, 좀 마음을 접어야 되나?
이건 포기가 아닌가? 이런 복잡한 마음이 들 텐데. 거꾸로 아이 입장에서 한번 상상을 해 보
죠. 아이가 태어날 때 우리 부모는 돈도 없고 성질도 나쁠 거야, 이렇게 기대하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죠? 엄마, 왜 다른 애들은 다 가졌는데 왜 나만 안 사줘.
우리 집 그렇게 가난해? 우리... 내 친구 엄마는 한 번도 안 때리는데 엄마는 왜 때려.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크면. 아이도 부모에 대해서 굉장히 이상적인 기대를 갖고 있죠.
그런데 우리 아이가 뭘 사달랬는데 내가 그걸 사줄 능력이 안 돼요. 그리고 사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런데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그걸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을까를 한번 생각을 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