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명석이는 여행작가 엄마와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엄마 권다현 씨는 그 시간 덕분에 아들과 친구가 됐다고 믿는다. 나들이라고 굳이 짐을 꾸려 멀리 떠날 필요는 없다. 집 앞 공원을 걷거나 지하철을 타고 근교에 훌쩍 다녀와도 좋다. 중요한 건 아이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추천하는 한나절 나들이 코스를 따라가보자. 아이와 함께하는 길마다 추억이 쌓인다.
✎ 엄마와 아들, 우리 나들이는 추억이다
출산 전날에도 남편과 남산을, 그것도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오를 만큼 어디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던 권다현 씨는 아들 명석이가 돌을 지날 무렵 여행작가로서 첫 책을 냈다. 육아와 취재, 원고 마감을 동시에 해내던 당시, 하루 한두 시간 겨우 눈을 붙이며 완성한 여행책이 바로 <내일로 기차로>다. “서래마을 근처에 살았는데,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 동네 산책을 하곤 했어요. 아이와의 첫 나들이도 몽마르트 공원과 놀이터였어요. 아이와 집에만 있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에게 푸른 나무와 색색의 꽃, 파란 하늘,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등 세상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엄마는 전국 곳곳으로 취재를 떠나야 했고,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한 시기인지라 아이도 종종 함께했다. 혼자라면 하루에 소화할 일정이 이틀, 사흘 걸리기도 했지만, 덕분에 그 시간은 고스란히 추억이 됐다. “올해 명석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훌쩍 자란 모습을 보면 대견하면서도 아쉬워요. 하지만 함께한 추억이 많다는 건 함께 나눌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죠. 잠들기 전에 우리가 어딜 갔었는지, 그때 뭐가 재밌었는지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기도 해요.” 물론 어린 아들과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친한 친구도 같이 있다 보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무작정 엄마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아들이 원하는 것에 끌려 다니지도 않았다.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어딜 가든 카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아이는 카페에 앉아 있는 게 답답하죠. 엄마에게도 커피 마실 시간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언제부턴가 아이가 먼저 커피 마시고 싶지 않냐며 물어봐요. 제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테이블에 장난감을 늘어놓고 혼자서도 잘 놀고요.” 엄마와 아들은 서로 원하는 걸 한발씩 양보하며 대화로 풀어가는 법을 길에서 배웠다. 여행 마지막 날엔 늘 캔맥주를 홀짝이는 엄마를 위해 우유나 주스로 ‘짠’도 해주는 아들. 어느덧 엄마와 아들은 마음이 잘 맞는 나들이 파트너가 됐다. “요즘엔 ‘솜사탕 데이트’를 자주 해요. 학교 앞에 솜사탕 파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아이가 솜사탕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솜사탕 하나 사서 아이랑 학교에서 학원까지 걸어요. 후문에 있는 분식집에서 떡볶이도 먹고요.” 엄마와 아이가 즐겁다면, 그곳이 어디든 추억이 된다.
<아이와 떠나는 한나절 하루 하룻밤 감성 여행>
권다현 지음 | 비타북스
여행 분야 베스트셀러인 <내일로 기차로>를 비롯해 <서울 여행 코스 101> <나 홀로 진짜 여행> 등을 펴낸 권다현 작가가 아들과 함께한 국내여행 코스를 책에 담았다. 여행 시간에 따라 한나절, 하루, 하룻밤 여행지로 묶어 장소별 최적의 코스를 알려준다. 미술관, 산책로, 테마파크, 유적지, 시티투어 등 아이와 부모 모두 즐길 수 있는 여행지로, 여행을 하며 느낀 엄마의 감정과 아이와의 에피소드를 에세이처럼 풀어내 읽는 재미를 더한다.
course 1
동네 골목 산책, 서울 서촌
지난해 봄,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에 다녀왔어요. 폴 매카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따뜻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좋더라고요. 명석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서촌 나들이를 했죠. 아이는 자기도 그런 사진을 찍고 싶다며 마음에 들어 했어요. 당시 메인 포스터가 아직도 명석이 방에 걸려 있어요. 어릴 때부터 미술관을 다니면 관람 에티켓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서촌엔 대림미술관, 박노수미술관 등 예술 공간이 여럿 있거든요. 옛 모습을 간직한 골목이 있고, 달고나가 있는 헌책방도 있어요. 구경거리 많은 시장도 있고요. 골목골목을 타박타박 걸으며 둘러볼 수 있다는 게 서촌의 매력이에요. 명석이가 좋아하는 것도 많아요. 걸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를 내는 박노수미술관의 마룻바닥, 통인시장의 맵지 않은 기름떡볶이, 먹으면 입술이 시퍼래지는 솜사탕이랑 뻥튀기도 있네요. 5월은 날이 좋으니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보세요. 박노수미술관에서 10분 정도 더 걸으면 수성동 계곡이 나와요. 정자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기가 서울인가 싶을 만큼 호젓한 공간이죠. 특히 비 온 다음 날엔 물이 많아 폭포가 제법 시원한 소리를 낸답니다.
통인시장
엽전을 구입해 원하는 반찬을 사면 푸짐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도시락 카페와 고춧가루와 간장에 버무린 떡을 솥뚜껑에서 볶아 만드는 기름떡볶이 등 아이와 함께 다양한 먹을거리를 고르고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영시간 9:00~21:00, 셋째 주 일요일 휴무(도시락 카페 11:00~16:00, 월요일ᆞ셋째 주 일요일 휴무)
주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5길 18
문의 02-722-0911
박노수미술관
박노수 화백이 40여 년간 머물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마룻바닥이 정겹다. 아파트에 익숙한 아이라면 미술관 안팎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전시와 연계해 어린이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열기도 한다. 감나무가 있는 정원과 미술관 뒤편 산책 코스도 아늑하다.
요금 어른 3천원, 어린이(7~12세) 1천2백원
운영시간 10:00~18:00, 월요일 휴관
주소 서울시 종로구 옥인1길 34
문의 02-2148-4171
대림미술관
사진, 디자인, 패션 등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선보이며 전시에 따라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 체험 등 작품과 관련된 창작 활동을 하는 ‘해피 칠드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미술관 바로 옆에 자리한 카페 ‘미술관 옆집’은 70년대 2층 주택을 개조한 고즈넉한 공간으로, 정원과 실내 온실이 있어 전시 관람 후 쉬어 가기 좋다.
요금 어른 6천원, 어린이(3~7세) 2천원
운영시간 10:00~18:00(목ᆞ토요일은 10:00~20:00), 월요일 휴관
주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4길 21
문의 02-720-0667, www.daelimmuseum.org
✓ 여행작가 엄마의 나들이 노하우
엄마 아빠가 가고 싶은 장소 고르기
아이가 좋아하거나 체험‧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장소만 찾는다면 부모는 괴로울 수 있다.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목적지로 떠나보자. 부모가 즐거워야 아이도 나들이가 즐겁다.
나들이 준비는 아이와 함께 하기
아이에게 여행지 사진을 보여주고 고르게 하는 등 준비 과정부터 참여시키면 아이도 나들이 장소에 더 친근감을 느낀다. 아이가 어떤 장소, 어떤 풍경을 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어 아이와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가끔은 단둘이 떠나기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도 좋지만, 때로는 엄마와 아이, 아빠와 아이 단둘이 떠나는 나들이도 추천한다. 평소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아이의 속마음도 알 수 있다. 아이가 둘 이상이라면 한 아이만 데리고도 떠나보자. 형제 사이에서 느낀 서운한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
나들이 추억은 기록으로 남기기
아이는 어려서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아이는 저마다의 이미지와 감각으로 나들이 순간을 기억한다. 사진으로 앨범을 만들거나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에 기록해 나중에 그때의 감정과 추억을 아이와 다시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course 2
아이를 위한 아트 체험, 양주 장욱진미술관
일산에서 살 때 즐겨 찾던 곳이에요. 구파발역에서도 버스로 30분이면 도착해 접근성이 좋아요. 미술관에 아이를 데려가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데, 이곳은 생전에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처럼 순수한 작품을 선보였던 화가 장욱진의 성향 때문인지 어린이 관람객에 대한 배려가 많은 편이에요. 아이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자주 있고요. 맞은편 장흥조각공원도 둘러보세요. 돗자리와 간식을 챙겨 가면 근사한 봄소풍을 즐길 수 있어요. 근처에 있는 가나아트파크도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며 아트 체험을 할 수 있어 추천해요.
장욱진미술관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 장욱진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으로, 신진 작가들의 전시도 이어진다. 어린이날 그림 그리기 대회나 아빠와 함께하는 드로잉 등 아이들을 위한 미술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올해 장욱진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요금 어른 5천원, 어린이(8~13세) 1천원
운영시간 10:00~18:00, 월요일 휴관
주소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문의 031-8082-4245, changucchin.yangju.go.kr
가나아트파크
아이 눈높이에 맞춘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어린이미술관 외에 피카소 어린이미술관, 어린이 체험관, 조각공원, 목마놀이터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섬유작가 토시코 맥아담의 텍스타일 작품인 에어포켓과 야외에 설치한 그물놀이터는 미술관도 하나의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요금 어른 8천원, 어린이(생후 24개월~13세) 6천원
운영시간 화~금 10:00~18:00, 주말‧공휴일 10:00~19:00
주소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17
문의 031-877-0500, www.artpark.co.kr
course 3
지하철로 떠나는 근교 나들이, 남양주 능내역
명석이가 기차 타는 걸 좋아해서 지하철로 움직일 수 있는 곳으로 나들이하곤 했어요. 그중에서도 경의중앙선으로 갈 수 있는 경기도 남양주가 꽃피는 봄철 다녀오기 좋아요. 팔당역에서 내리면 되는데, 역 바로 앞에 박물관이 있고 주변에 자전거길과 산책 코스도 있어요. 팔당역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더 들어가면 간이역인 능내역이 나와요. 아이 놀거리가 있을까 싶었는데, 폐역이라 기찻길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 아이가 좋아하더라고요. 능내역 마스코트인 고양이 ‘능내’와도 금세 친해졌고요. 아이와 나들이하며 길에서 배운 게 많아요. 아이가 재미있어할까,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엄마의 고민이 오히려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울타리를 더 좁게 만들더라고요. 아이는 자갈이나 모래만 있어도 한참을 놀 수 있어요. 막 세 살이던 명석이가 왕복 3km 정도인 제주 곶자왈 산책로를 혼자 힘으로 걸었을 때도 깨달았어요. 아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미리 나누지 말자. 앞으로 무엇을 하든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어요.
능내역
1960년대만 해도 근처 남한강변을 찾는 나들이객들로 북적이던 기차역이지만, 폐역이 된 지금은 옛 대합실 풍경을 재현한 추억의 공간이다. 역을 지키는 애교 많은 고양이와 고즈넉한 기찻길도 만날 수 있다.
주소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566-5
남양주역사박물관
남양주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전통 탁본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아이들이 역사를 놀이처럼 즐기며 배울 수 있다.
요금 어른 1천원, 어린이(7~12세) 6백원
운영시간 9:00~18:00, 월요일 휴관
주소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로 121
문의 031-576-0558, nyjmuseum.go.kr
✓ 명석이가 좋아하는 나들이 준비물
배낭
물티슈, 옷, 장난감 등 나들이에 필요한 자기 짐은 스스로 책임지도록 했어요. 함께 고른 배낭은 책가방으로 사용하는데, 그래서인지 학교 갈 때마다 여행 가는 기분이래요.
선글라스와 애착인형
처음엔 자외선이나 먼지로부터 아이 눈을 보호하려고 챙겼는데, 아이도 멋있나 봐요. 요즘은 나들이 때마다 아이가 먼저 챙기더라고요. 아이가 돌 무렵부터 애착을 보이던 인형 ‘블라블라’도 필수품이에요. 애착인형만 있으면 잠자리가 바뀌어도 잘 자요. 너무 낡아서 똑같은 걸로 하나 더 사줬더니, 이제 둘 다 데리고 다니네요.
스탬프북
기차를 타거나 역 근처로 나들이할 때 필요해요. 역마다 기념 스탬프가 있는데 그걸 모으는 게 저와 아들의 특별한 취미거든요.
사진제공 권다현 글 윤세은(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