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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뮤지컬 <애니>의 두 주인공 이지민, 전예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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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쟁쟁한 뮤지컬들이 경쟁적으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화려한 무대와 탄탄한 자본, 그리고 유명한 배우들을 무기로 내세운 많은 뮤지컬들이 관객들의 평가를 받았다. 어떤 뮤지컬은 연출력과 구성 때문에 호평을 받기도 하고 어떤 뮤지컬은 잘못된 캐스팅으로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중에서 세간의 큰 기대를 모으지 않았던 뮤지컬 한 편이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바로 뮤지컬 <애니>다. 아이들의 노래며 연기가 관객들을 감동시켰다는 것이다. 규모와 명성을 흥행요소로 삼던 뮤지컬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 것은 바로 어린 소녀들이었다.

뮤지컬 <애니>를 보러 세종문화회관으로 갔다. 큰 무대 위의 한 소녀는 더욱 작아 보였다. 그녀가 일어서서 턱을바짝 쳐들고 사람들을 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턱을 들고 힘껏 외쳐. 오, 해가 떠요, 내일의.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요. 견뎌요. tomorrow, tommorrow, 난 너를 사랑해. 널 내일 볼 수 있어”라고 노래하는 조그만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결국 눈물이 나고야 말았다. 온 힘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는 작은 소녀는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만으로 수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부드럽고 힘차게 올라가는 그 곡선의 선율이 유형의 힘이 되어 모든 관객들을 하나의 감정 속에 빠지게 했다. 그것은 빨갛고 작은 태양, 눈물을 흘리다가도 눈을 들어 보게 되는 아름다운 일출의 모습과도 같았다.

뮤지컬 <애니>는 결코 쉬운 공연이 아니다. 주인공 애니는 3시간 가까운 공연 동안 계속 등장하면서 끊임없이 춤추고 노래하고 무대를 사로잡는다. 어떤 뮤지컬도 주인공 한 사람의 역할에 이렇게까지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어른이라도 엄청난 부담감과 체력이 요구되는 배역이다. 197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애니>는 대본상, 각색상, 가사상, 여배우상 등 토니상 7개 부문을 석권했던 고전 뮤지컬이다. 1982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고아 애니가 백만장자인 올리버 워벅스를 만나면서 사랑과 가정을 찾아가는 따뜻한 이야기와 꼬마들이 끊임없이 부르는 ‘tomorrow’의 아름다운 음악이 어우러져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뮤지컬이다.

애니의 두 주인공과 엄마들을 만나기 위해 한강이 보이는 스튜디오로 가는 길에 타고 가는 차의 창문을 내렸다. 왠지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나에게도 내일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름답게 무대를 빛낼 미래를! 전예지
“초등학교 4학년 때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어요. 어린 코제트가 큰 무대에서 노래하는것을 보고 ‘아, 나도 저렇게 큰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13세의 뮤지컬 배우 전예지를 처음 보는 순간 깨달았다. 배우의 재능과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을 타고난 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얼굴이 예쁘다거나 노래를 잘 부르는 문제가 아니다. 그녀에게는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어떤 에너지가 있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성악가인 예지는 따로 노래를 배운 적이 없다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녀가 잘 다듬어진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엄마는 예지가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발레보다는 재즈 같은 활발한 무용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발산시켜주고 싶어서 학원을 보냈는데, 그 무용 학원 선생님이 EBS 방송에 소개를 해줬어요. 처음엔 못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조명이 켜지니까 눈빛이 달라지고 빛을 발하더라고요. 방송을 하면서부터 아이의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이젠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원하는 것을 똑부러지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시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함께 애니 역할을 맡은 지민이도 예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애니 첫 공연 때 예지가 너무떨린다며 울었는데 무대에 나가는 순간 언제 울었냐는 듯 전혀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 말이다. 내성적이던 예지에게는 자신의 끼를 발산할 무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엄마가 설명하는 예지의 타고난 재능은 표현력이다.

예를 들어 예지는 어떤 소리를 들으면“이건 좋아하고 있는 파랑이야”라든지 “재미있는 빨강이야”라고 이야기할 정도. 사람의 목소리도 색깔에 비교하여 표현한다. 음악적인 감성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는데, 1년 전 본 뮤지컬에 나오는 멜로디를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해 부르기도 하고 매 순간의 감정을 음악이나 멜로디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는 예지가 너무 어려서부터 주목받는 것이 걱정이다.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지만 어려서부터 세인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는 아이의 엄마 역할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뮤지컬 애니의 경우 주인공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욱 크다. 아이의 투정을 더 받아주지 못하고 책임감을 강조하면서 아이를 지켜보는 것은 엄마 자신의 무대를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예지의 무대를 본 아빠는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지만 엄마에게 딸의 무대는 언제나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재능 있는 아이를둔 엄마는 객관적이 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전문가의 말이나 평가, 지금 그 아이의 모습이 바로 그 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요. 엄마가 아이보다 앞서가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아이라 하더라도 억지로 너무 많은 것을 주입하다보면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거든요.”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당차게 말하는 예지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것은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서 화려한 내일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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