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에서 피아노 수업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은 기쁨이다. 같은 곡을 이렇게 표현하면 슬픔이 되지. 이제, 슬픔을 표현해봐라”라고 피아노를 가르치더군요. 그때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풀어주고 열어주고 표현하면 감정은 발전합니다.
현대인의 가장 취약점이 바로 감정의 조절입니다. 풀어주지 못한 그놈의 감정이 쌓여서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 스트레스는 알레르기, 위염, 장염, 암 등 현대병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우리는 어릴 적 감성에 대한 교육은 받은 적이 없습니다.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혼자가 되어서 주변을 바라보고 환경을 느끼고 자신의 깊숙이 들어가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음악은 우리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인 감정을 훈련시켜줍니다. 이곳에서 음악이 주는 모든 신비로운 혜택들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는 음악이 흘렀습니다
어릴 적, 햇살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피아노가 있는 작은 응접실에 엎드려서 어머니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취미로 피아노를 시작하셨던 어머니는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피아노 소품을 자주 연주했는데, 그 음악은 왠지 어머니의 느낌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엘리제를 위하여’는 마치 어머니의 몸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의 굴곡, 어깨선, 부드럽게 떨어지는 옆 선 모두 하나하나의 선율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 음악이 주는 여성스러움, 따뜻함, 섬세함 모두 부드러운 햇빛에 비치는 어머니와 하나였습니다. 음악은 이렇게 생의 한 장면, 한순간과 결합합니다. 음악과 인생의 가장 큰 공통점은 시간성일 것입니다. 그 둘은 모두 각각의 리듬을 타고 각각의 곡선을 만들며 지나갑니다. 잠시 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머릿속에 그려봤습니다. 그때마다 하나의 장면과 하나의 음악이 들려왔습니다.
나에게 피아노 학원은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그곳에서 들려오던 음악 소리만큼은 달랐습니다. 다양한 선들이 교차하며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들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연습방 한구석에서 옆방에서 들리는 소나티네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한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든지 춤추는 소녀의 이야기를 상상해내곤 했습니다. 피아노 학원의 무서운 선생님에 질려 초등학교 이후로는 피아노에 손도 대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사람의 손과 풍부한 소리가 만들어내는 그 공간에는 어린아이를 자기만의 아름다운 세계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공기가 존재했습니다.
십대에 들어서자 감정을 끌어내는 맑은 음악에 끌렸습니다. 리처드 클라이더만이나 케니지 같은. 모든 사물이 평상시보다 100배 정도는 확대돼서 느껴졌습니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밖으로 나가면 갑자기 모든 것들이 곧장 영혼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뭇잎이 하늘 거리고 흙냄새가 나고 바람이 귓가를 슬쩍 건드리고 지나갈 때, ‘행복’ 이라는 단어가 손으로 생생하게 만져질것만 같았습니다. 내게 기술만 가르치려 했던 피아노 교육은 실패했지만 음악은 계속해서 내 옆에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비가 오는 날, 수업시간에 몰래 이어폰을 옆 친구와 나눠 끼고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뛰던 경험도 아마 십대이기에 가능했겠죠.
고등학교 때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음악에 빠졌더랬습니다. X-Japan, 스키드 로, 본조비, 오지오스본, 머틀리 크루의 ‘Home sweet home’을 들으면 답답하던 가슴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귀가 떨어질 정도로 크게 듣던 음악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사춘기에 가장 가까운 친구가 돼 용기를 줬습니다. 그때는 친구들 사이에 좋아하는 음악을 녹음해주는 게 유행이었는데, 오페라 ‘나비부인’부터 ‘제이팝’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음악들이 녹음된 테이프에 담긴 음악들은 친구와 꼭 닮아 있었고, 그 음악 속에는 친구의 갈등과 고민까지도 함께 들어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자 예전처럼 시끄러운 음악보다는 나의 감성에 맞는 음악들이 자연스레 귀에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파흐벨의 ‘캐논’에 중독되어 모든 종류의-가야금부터 팝송에 이르기까지- 캐논을 수집해서 듣기도 했고(오늘 아침에는 하피스트 곽정이 하프로 캐논을 연주하더군요), 너바나부터 시작된 모던록의 낮게 깔리면서 감정을 자극하는 절제된 뜨거움이야말로 나의 감정의 원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혼 후에 작은 신혼집에 살림을 장만해가던 우리 가족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스피커를 얻어온 날입니다. 비싼 오디오는 살 엄두도 못 낸 채 작은 스피커를 컴퓨터에 연결했을 뿐이지만 드디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라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뻐서 비가 오는 일요일에 불도안 켜고 하루 종일 비요크나 콜드플레이, 라디오헤드 등의 음악을 끊임없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신혼집에 음악이 들어온다는 것은 우리의 작은 집이 드디어 물질적인것뿐만 아니라 영혼의 안식처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요했습니다. 음악은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되새겨줍니다. 음악은 친구이자 동반자이고 살아 숨쉬는 물질화된 우리의 감정들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것을 결정합니다. 생의 의미, 행복, 그리고 사랑 말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그런 추상적인 것들은 커다란 일을 해냅니다. 음악은 결국 우리의 영혼을 기르는 터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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