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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앗! 아이 앞에서 "헤어져"라고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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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배고프다며 냉장고를 열더니 “왜 오이가 물러 터져 있느냐”고 잔소리할 때만 해도 참았다. 하지만 베란다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며 신문지 더미를 툭툭 발로 차는 모습에 “왜 만날 나만 해야 돼? 당신은 이 집에 안 살아?”라며 꽥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순간 “엄마, 아빠랑 싸우지 마~”하는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살려니까 싸우지, 헤어지려면 왜 싸우느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부싸움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한집에 사는 데 다툼이 없다면 이상한 일 아닌가. 싸울 땐 곧 끝낼 것처럼 이를 갈아도 웬만한 일이 아니면 함께 부대끼고 살다 보면 상처는 어루만져지고, 보듬어진다. 문제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것을 본 아이가 갖게 되는 불안감과 충격이다.

아이는 높은 곳에 강제로 매달린
공포감을 느낀다

크든 작든 엄마 아빠가 싸우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아이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는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부모의 싸움을 겪는 아이는 높은 곳에 강제로 매달려 있는 정도의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대개 엄마 아빠가 싸울 때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며, 무엇인가 큰일이 난 것 같은 공황상태에 빠진다. 때로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부모가 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축되기도 한다. 엄마 아빠가 싸워서 나를 떠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일도 있다. 특히 엄마 아빠가 신경질적인 톤으로 말하거나 소리 지르는 것을 들으면,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이러한 반응은 신체 변화로도 나타난다. 교감신경계가 강하게 반응하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땀을 흘리며, 근육이 긴장하는 것.

일반적으로 서로 티격태격하는 정도로 말다툼할 때와 서로 욕하거나 때리면서 싸우는 것을 본 아이가 느끼는 불안의 정도는 확연하게 다르다. 말로 다투는 정도의 싸움에서 아이는 ‘엄마 아빠가 서로 헤어지면 어떡하나?’ ‘혹시 나 때문에 다투나?’ 등 자신에게 다가올 좋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두려움을 느낀다. 또 눈치를 보고 집을 불편한 장소로 생각한다.
엄마가 소리 지를 때는 불안감이 한층 커진다. 이는 아이가 아무리 어려도 마찬가지로 12개월 미만 아이들도 싸우는 소리에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이에 따라서는 밖에서 나는 굴삭기나 청소기 소리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부모의 큰 목소리는 강한 공포로 다가온다. 또 ‘더 크게 싸우면 어떡하지?’ ‘혹시 내게도 소리를 지를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물건을 던지거나 욕하는 강도의 싸움은 아이를 공포감에 휩싸이게 한다. 엄마 혹은 아빠를 우리 집의 소중한 것을 부수는 사람으로 생각하여 두렵게 여기고 싸움이 끝나더라도 그 공포감은 계속 유지되어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을 회피한다. 애착을 형성하는 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때리면서 싸우는 것을 보면 아이는 불안이나 공포를 넘어 고통을 받는다. 자신도 저렇게 폭력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르러 아예 그 상황을 피하려고 하거나 얼어붙은 듯 꼼짝 않고 숨어 있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와 함께 ‘엄마나 아빠가 죽으면 어떡하나?’ 등의 극단적인 생각도 하게 된다. 이렇게 자신과 함께 지내는 사람이 맞는 모습은 아이가 자란 후에도 잊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심하고 눈치 보는 아이를 만든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손석한 원장에 따르면 부부가 싸우는 모습을 볼 때 아이의 반응은 다양하다. 첫째 부모를 말리는 유형으로 ‘제발 하지 말라’고 말한다. 불안해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거나 울면서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방법은 다르더라도 엄마 아빠의 싸움을 말린다는 것. 실제 가끔 남편과 성격 차로 큰 소리를 내며 싸운다는 대학 동창의 다섯 살배기 딸아이는 남편과 다툴 때마다 자신에게 다가와 “엄마 싸우지 말고 책 읽어줘”라고 잡아 끈다고 한다. 이렇게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거나 때때로 “아빠, 엄마 좀 그만 괴롭혀”라며 한쪽 편을 드는 아이도 있다.

이와 달리 싸우는 상황에서 벗어나 회피하는 아이도 있다. 자기 나름대로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엄마 아빠에게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들어 하는 모습으로 다른 방에 가서 자해하거나 손톱을 물어뜯기도 한다.
때때로 가만히 구석에 앉아서 엄마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도 있으며 울며 뛰며 안절부절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해하며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불안감이 상승하여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 스트레스가 점점 더 커질 경우 틱이나 함묵증을 보일 수 있으며 심할 경우 탈모와 같은 외형적 변화도 초래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소심하고 눈치를 본다. 자기를 비하하기도 하고, 늘 수동적이 되는 것. 반대로 폭력적인 성향을 띠기도 한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괴롭히는 등 동물을 학대하고, 신경질이 날 경우 책이나 베개 등 물건을 던지거나 찢어버리기도 한다. 한국아동발달센터의 한춘근 소장은 “아이들이 소꿉놀이할 때 대화가 강압적이고 큰 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아이 중에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이 커가면서 폭력을 당연시하고 더욱 공격적이 된다는 점이다”라며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성향은 대인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소심하고 우울증을 보이기도 하며 내성적이고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는 것.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닥치거나 의견을 조율할 때도 차근차근 주장을 펼쳐 논리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거나 다른 이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또래 관계에서 불화를 만들고, 나아가서는 학교 생활과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어리더라도 싸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부부싸움이 주는 충격 자체도 문제지만 싸운 후 엄마 아빠의 격한 감정에서 비롯된 아이를 대하는 잘못된 태도 역시 상처가 된다. 부부가 싸우면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 찬다. 서로의 잘못에 초점을 맞추고, 그 잘못을 알리기 위해, 상대방에게 이기기 위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논리와 근거를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에는 아이를 의식하지만 점차 흥분하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남편 혹은 아내와 싸운 후 아이를 대하기 전에 잠시 감정적 흥분을 가라앉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은 여전히 아이의 엄마 또는 아빠라는 것을 인식하고 잠시 혼자서 가만히 앉아 있거나 심호흡을 하자.
싸우는 모습을 보인 경우 부모는 아이에게 부끄럽고 미안하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을 고통 속에서 지내도록 한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아이를 달랠 때는 일단 많이 놀랐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아이의 생각을 물어본 뒤 안정시켜야 한다.

이때 아빠와 엄마가 서로 생각이 달라서 얘기하다가 싸움으로 번졌다고 설명하고 다시 화해할 것임을 말해 아이를 안심시킨다. 싸운 이유를 아이의 나이와 이해 수준에 맞게 명확하게 말해준다. 그래야 아이가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후 화해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때때로 부부 싸움 후에는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아이의 생각을 충분히 들어주고 아이의 생각과 느낌 자체를 인정해준다. 그 후 부모의 입장을 들려준다. 이 과정에서 절대 아이의 생각을 한번에 고치려고 하지 말 것.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부모의 설명에 납득하면 저절로 고쳐진다. 이후에 엄마 아빠가 화해한다면 부모에 대한 나쁜 생각은 금세 없어질 것이다. 싸운 후 자신의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혹은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퉁명스럽게 대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넌 왜 그렇게 흘리고 먹니? 꼭 제 아빠야”라며 아이에게 자신의 모습이나 상대의 모습을 투영해 화를 내곤 한다. 이는 어른의 잘못을 아이에게 전가하는 행동에 불과하다. 이렇게 부부싸움 후 아이를 혼내면 아이는 야단맞지 않도록 감정을 억누르고 생활할 수 있으며, 사랑을 얻기 위해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엄마가 친척이나 동네 이웃들과 이야기하면서 남편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일도 조심한다. 아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권위가 무너지며, 잘 대해주더라도 괜히 부정적인 감정을 앞세워 아빠를 대할 수 있다.

싸울 때도 룰이 필요하다
심하게 부부싸움한 후에는 아이의 상태를 잘 살펴야 한다. 아이가 주눅이 들어 부모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있는데 이는 엄마 아빠가 화를 내며 싸운 모습이 아이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것이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에게도 화를 내고 비난할 거라 생각해 눈치 보기 시작하는 것. 이때는 아이를 안아주며 엄마 아빠가 싸웠지만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 뒤 아이에게는 화내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킨다.

아이가 자꾸 보채고 자다 깨서 운다면 불안 정도가 공포 수준에 이른 것이다. 특히 자면서 악몽을 꾸거나 놀라서 우는 야경증을 보인다면 아이를 자주 안아주고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는 아이 앞에서 절대로 부부싸움을 하면 안 된다. 아이의 상태를 세심히 관찰하고 이런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발달센터나 소아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받아보도록 한다.
때때로 격하게 싸운 후에도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하는 부모가 있다. 부모가 싸운 것을 아이가 모른다면 문제없지만 이미 알고 있는 상태라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아이는 보이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면 그 감정이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이 경우 아이는 혼자서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엄마 아빠가 언제 화를 내고 짜증을 낼지 몰라 더욱 불안해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실천하기에 이보다 어려운 일도 없지 않은가. 때문에 미리 싸움의 룰을 정해 아이에게 상처 주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상대의 약점을 잡아 인격적으로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부수는 행동, 상대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자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등 싸울 때 해서는 안 될 것들을 정한다. 또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수 있도록 부부싸움을 할 때 높임말을 쓴다든가 싸우는 문제의 본질을 서로 인식하고, 예전의 일을 끄집어내어 싸우지 않는다는 등을 약속한다. 싸움에 아이를 끌어들여 누가 옳은지 물어보거나 헤어지면 누구와 살 것인지 등 판단을 강요하는 일도 아이에게 엄청난 충격과 혼란을 안겨준다. 특히 싸울 때마다 습관처럼 헤어지자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설령 그것이 실제 이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아이는 그 말을 진심으로 알아듣고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또한 아이를 배려한다는 생각에 다툼이 생길 경우 아이를 방에 들어가게 하고 문을 닫고 싸우는 경우가 있다. 그나마 눈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안 보이려는 배려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는 방에 들어가 있더라도 엄마 아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두려움에 떨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공포를 가중시킬 수 있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순간 아이는 전쟁의 공포, 그중에서도 총부리가 자신에게 겨눠진 순간의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치명적이다. 부모의 싸움을 갈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생존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성격이 급해 아무리 미리 룰을 정해도 소용없다면 이도 저도 필요 없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별일 아닌 일로 싸우던 순간 자신의 감정을 떠올려보자. 오래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하희라가 식구들에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남편과 다툴 일이 있을 때면 “놀이터로 와”라고 한마디 던지던 센스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200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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