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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국적 창의성이 세계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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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에게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했는가. 창의성은 패션이나 디자인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글・거북선・금속활자・가야금 등 한국인만의 창의성이 드러나는 결과물은 무수히 많다. 아이가 글로벌 사회에서 진정 차별화되는 능력을 갖길 바란다면 ‘한국적’ 창의성을 키워주자. 우리만의 문화와 전통에서 찾은 창의성, 아이에게 물려주기. 역사와 전통에서
한국적 창의성을 찾다

창의력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계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일본 해군을 거북선으로 물리쳤다는 역사적 자부심이 오늘날의 조선산업을 이룩한 것처럼. 우리의 문화와 전통,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적 창의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미실은 여장부이자 뛰어난 정치가다. 훗날을 내다보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그녀의 통찰력과 카리스마는 드라마에서 찬란한 죽음을 맞은 후에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덕만이 공주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미실의 통찰력을 역이용한 덕이 아니었던가. <창의성의 즐거움>의 저자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성은 일종의 정신 활동으로서, 특정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통찰력”이라고 정의 하며, 이러한 창의적 통찰력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세계 1위를 만든 한국의 창의성
하지만 국내외 한국학자들은 “한국인의 놀라운 추진력 속에는 사안에 대한 통찰력과 엄밀한 계산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창의적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 기업을 통해 국가경제를 일으킨 창업 1세대 지도자들만 봐도 그렇다. 주변의 비아냥거림에도 조선소를 지은 현대 고 정주영 회장과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반도체가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명의 핵”이라며 반도체 사업을 추진한 삼성 전 이건희 회장이 대표적인 케이스.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은 지금 “한국이 만들지 못하는 배는 없다할 만큼 세계 최강을 자랑한다. 2000년대 들어 세계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도 세계 1위는 문제없다고 한다. 반도체 역시 마찬가지다. ‘신화’라 불릴 정도의 눈부신 도약을 거쳐 지금은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점유율이 60%를 넘어섰을 정도다.

우리가 늘 접하는 웹 문화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창의적 통찰력의 산물로 꼽힌다. 한 포털사이트의 카페로 시작해 지금 6백70만 개에 달한다는 커뮤니티는 정치・사회 문제 할 것 없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한 포털사이트의 ‘경험을 지식화’ 하는 서비스는 누구나 동등하게 지식을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었다. 구글이나 야후 같은 세계적인 업체도 이를 벤치마킹한 모델을 선보였지만, 이용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국은 프로슈머의 수가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생산자인 ‘producer’와 소비자인 ‘consumer’를 합친 ‘prosumer’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그의 저서에서 새로운 시대에 ‘이름 없는 영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할 정도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주시할 만한 기반을 만들어갈 주체로 꼽힌다. 발품 팔아 은행 가는 대신 인터넷으로 계좌이체 서비스를 이용하고,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취미생활을 공유하며, 꼼꼼한 제품 사용후기를 인터넷에 올리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프로슈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널리 세상을 편하게 만드는 한국 특유의 창의성
그럼, 우리의 창의적 통찰력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유럽연합 집행이 사회 안보전문가이자 아디아컨설턴시 대표인 조명진은 한 칼럼에서 한국인에게는 ‘편의적 창의성’과 ‘세부적 창의성’이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 행정 시스템 덕분에 관공서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공문서를 뗄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한다. 또 우리는 1980년대 후반부터 번호표 제도 덕에 은행 창구 앞에서 줄을 설 필요가 없게 됐지만, 독일・프랑스・영국은 지금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동아시아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은 매년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선정되고, 우리의 항공사들은 유럽 항공사보다 고객 서비스 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고객 편의를 위해 시스템을 과감하게 바꿀 수 있는 문화가 바로 ‘편의적 창의성’이 이뤄낸 결과인 것이다.

‘세부적 창의성’은 좀 더 이해하기 쉽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감각이 뛰어난 ‘손’을 가지고 있다. 손을 정교하게 사용하는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 행복한창의성연구소 전경원 소장은 “중국인이나 미국인이 생각하는 창의성과 한국인이 생각하는 창의성은 개념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창의성의 개념은 민족과 문화에 따라 다른데, 한국인이 생각하는 창의성의 개념 중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점은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빨리 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것을 창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손동작이 정교해 빠른 시간 내에 남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앞서 말한 반도체 기술을 비롯해 수술 테크닉, 애니메이션 같은 분야를 생각해보자. 우리의 탁월한 손기술은 이탈리아 바이올린보다 천년 앞선 우륵의 가야금과 고구려 왕산악의 거문고에서도 볼 수 있다. 신라의 금속공예와 고려청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거북선도 마찬가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직지심경은 우리가 최초로 금속활자를 창안하고 발전시킨 민족임을 실증한 예이며, 거북선과 장보고 선단의 배들은 한때 세계 최고라 인정받던 바이킹의 배보다 더 정교하다.

기후변화와 침략의 역사가 창의성을 만들었다
우리가 이러한 창의적 특징을 갖게 된 이유는 역사와 전통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시베리아 같은 겨울과 열대지방 같은 여름이 공존하는 나라다. 사계절이 뚜렷할 뿐 아니라 태풍이나 가뭄 같은 극단적인 기후변화도 있다. 우리 조상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의식주의 형태를 바꾸며 살아왔다. 적응력이 뛰어난, 즉 편의적 성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해양과 대륙의 완충 지점에 위치한 지리적 요인도 ‘편의적 창의성’을 만들어내는 데 한몫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바다 건너 일본을 비롯해 대륙의 당나라, 수나라, 명나라, 몽골 등 수많은 나라의 침략을 받아오면서 주변 강대국의 편의에 맞추어 살아온 것이 사실. 전통 유교문화 또한 ‘편의적 창의성’에 영향을 미쳤다. 장유유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예부터 관계, 직위, 나이에 따라 처신을 달리해야 했다. 즉 늘 윗사람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평등정신이 깊이 뿌리내린 프랑스 같은 나라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문화다.

한글보다 정교한 언어는 없다
‘세부적 창의성’ 역시 전통문화에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서양인이 식사할 때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상대적으로 손가락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젓가락을 사용해왔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젓가락은 특히 중국의 길고 굵은 나무젓가락이나 일본의 매끈한 젓가락보다 짧고 가늘며 무겁다. 하지만 한번 손에 익은 스테인리스 젓가락은 반찬을 집을 때 그 어떤 식기보다 정교하다. 새우젓의 눈까지 빼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 창의적인 성과를 이뤄내는 데 영향을 끼친 전통 식문화는 이뿐이 아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비빔밥・김치・불고기 같은 전통 음식은 온갖 양념을 적절하게 배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료의 정교한 배합과 숙성 정도에 따라 음식의 맛은 크게 달라진다. 한국인이 세세한 정밀작업을 할 때 탁월한 강점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세심한 식문화 덕분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세부적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친다. 한글은 세계 어떤 언어보다 세밀하다. 영어의 ‘wear’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양말을 ‘신는다’고 표현하지만 영어에서는 이들 모두 ‘wear’라는 한 단어로 표현한다. ‘빨갛다’는 느낌도 ‘불그스름하다’, ‘발그레하다’, ‘발갛다’, ‘불그죽죽하다’, ‘새빨갛다’, ‘시뻘겋다’처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또 있을까. 외국인이 이들 표현의 미세한 차이를 알 리 없으니,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국 작가가 없다는 것에 서운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한글은 마치 블록을 조립하는 것과 같다. 독일어를 비롯한 외국어 중에도 이렇게 자음과 모음을 결합해야 글자나 단어가 완성되는 언어는 많다. 하지만 외국어가 단순한 수평식 나열이라면 한글은 여기에 수직적인 혼합을 가미해야 한다. 늘 사용하는 말이 이렇게 정교하니, 우리에게 ‘세부적 창의성’이 발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와는 다른 세계 각국의 창의성

‘시각적 창의성’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는 고갱, 밀레, 마네, 르느와르, 모네, 마티스, 샤갈 등 무수히 많은 유명 화가를 배출해냈다. 랑콤, 로레알, 비쉬 같은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 샤넬, 까르띠에, 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를 봐도 프랑스인이 시각적 아름다움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대중적 창의성’의 나라 영국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정통 클래식은 약하지만, 대중음악에서는 강세를 보인다. 비틀스, 퀸, 롤링스톤스, 비지스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뮤지션의 대다수가 영국 출신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같은 흥행 영화의 원작자도 영국인. 영국에서 창작하지 않은 작품이 영국에서 상업화된 경우도 많다. 스웨덴 가수 아바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의 작가, 이를 영화로 만든 감독이 영국인인 것을 보면 영국은 대중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데 뛰어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인간중심적 창의성’의 나라 스웨덴
세계 최초로 안전벨트를 장착한 자동차는 스웨덴의 볼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스웨덴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2백년간 전쟁에 말려든 적이 없다. 그들의 사회복지제도는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꼽히며, 그들의 가구는 인체공학에 중점을 두어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차원적 창의성’의 나라 이탈리아
이탈라아인의 창의성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최고의 예술을 추구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작품은 최고의 상류층, 즉 극소수를 만족시키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최고급 스포츠카인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세계 최고가의 수공예품으로 인정받는 바이올린 과르네리Guarneri와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 같은 명기를 보면 이탈리아인의 창의성은 고차원적이라 할 수 있다.

‘논리적 창의성’의 나라 독일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같은 철학자, 괴테 같은 문인들의 공통점은 논리적 기능을 담당하는 좌뇌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독일은 베토벤, 하이든, 바흐, 멘델스존, 슈베르트 등의 유명 작곡가를 배출했는데, 정해진 음계와 조라는 규칙 안에서 다양한 변주를 동원한 작곡 역시 논리적 창의성을 요구한다.

201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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