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꽤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 한국 청소년들이 ‘지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더불어 사는 능력’은 세계 꼴찌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 아이들의 심각한 학교 폭력, 왕따 문제 등을 보면 그리 어리둥절한 결과도 아니다. 지금 중고등학생은 IMF 외환위기 이후, 조기교육 열풍이 불던 때 유아교육을 받았던 아이들이다. 이때 조기교육은 지금처럼 다양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주입식 문자 학습이었다. 두뇌 발달 전문가들은 이것이 모두 “다양한 경험과 자극으로 뇌가 골고루 자극을 받아야 하는데 오로지 학습 자극만 받았기 때문에 아이의 두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성인 뇌의 80% 이상이 완성되는 생후 3년까지 부모가 아이와 얼마나 교감하느냐,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느냐에 따라 아이의 평생 두뇌가 달라진다고한다. 우리 아이가 똑똑하고, 남을 잘 배려하고, 창의력이 높은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면 이번 두뇌 발달 기사를 꼼꼼히 살펴보자. 그리고 명심하자.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좋은 두뇌를 가진 아이로 키울 수 있는 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0~3세 뇌의 80%가 완성된다!
‘왜 3세까지일까?’ 하고 궁금해할 엄마들을 위해 이 시기가 두뇌 발달의 최적기임을 알려주는 연구 결과들을 모아봤다. 아이의 뇌가 생후 3년 동안 어떻게 발달하는지 알고나면 양육법의 길이 보일 것이다.
01 “태아는 목소리뿐 아니라 냄새도 기억한다”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의 김암 교수팀과 KBS 특집 다큐멘터리 <첨단보고 뇌과학> 제작팀이 태아가 냄새를 맡고 기억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생후 2일째인 아이에게 자궁 안의 양수를 기억하는지 실험을 실시한 것. 분만 시 채취한 양수를 거즈에 묻혀 아이가 울 때 냄새를 맡게 했는데 놀랍게도 거즈를 가까이 대자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다시 반복하자 그 냄새와 맛을 아는 듯 아이는 입맛까지 다셨다. 연구팀은 아이가 엄마의 양수를 구별할 수 있는지도 알아봤다. 각각 엄마의 양수와 다른 산모의 양수를 묻힌 거즈를 아이 얼굴 양쪽에 댔더니 엄마의 양수를 묻힌 거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두 20명의 신생아를 대상으로 테스트한 결과, 90%에 해당하는 18명의 아이가 자신이 살았던 자궁 속의 양수를 구별해냈다.
아이의 뇌 발달이 태내에서 상당 부분 이뤄지고, 아이의 감각중추가 발달해 뱃속에서 들은 소리나 맡았던 냄새에 대해 반응하는 것을 확인한 실험이다. 임신부의 몸과 마음가짐이 중요한 이유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02 “임신 초기에 좋은 뇌가 결정된다”
뇌의 초기 발생에 대한 연구 전문가로 손꼽히는 미국 뉴욕 록펠러 대학의 메리 해튼 박사는 “임신 초기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임신 6주차 태아의 모습을 보면 몸통과 머리로만 구분돼 있는데, 이때 머리에는 이미 혈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뇌가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로, 이때부터 임신 12주까지 뇌에서는 세포들이 왕성하게 이동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즉, 좋은 뇌를 만들기 위한 세포들의 여행인 것. 신기한 것은 수억 개의 모든 세포가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포들이 이동할 때 환경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임신부가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복용한다든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이동 과정을 중단한다는 것. 이동을 중단한 세포들은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태아의 뇌 발달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03 “뇌 발달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
1970년 11월, 미국 사회는 엽기적인 사건을 접하고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사건의 주인공은 지니라는 열세살 소녀였다. 그녀의 아빠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골방에 가두고 꽁꽁 묶어버렸다. 그러고 지니가 소리를 내려고 할 때마다 시끄럽다는 이유로 폭력을 가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엄마는 남편의 폭력 앞에 무기력했고, 지니의 오빠 또한 아빠의 명령으로 동생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지니가 태어난 지 13년이 지난 어느 날, 이웃 주민의 신고로 마침내 지니와 엄마가 탈출했다. 세상으로 나온 지니는 이상행동을 보였다. 아기처럼 소리를 지르고 제대로 걷지 못할 뿐 아니라 기저귀를 채워야 했다. 눈앞 3.6m 이상은 볼 수 없었고, 말을 하거나 알아듣지도 못했다. 언어학자, 심리학자, 의사들이 참여한 재활팀이 꾸려졌고 사람들은 지니가 완전하게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2년 만에 1백20개 정도의 단어를 말할 수 있었을 뿐, 지니의 언어능력과 지능은 두 살 아이의 수준에서 멈췄다.
이 사례로 과학자들은 뇌 발달 과정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언어습득은 외부 자극에 의해 인간의 뇌에 특정 신경회로(베르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가 만들어져야 가능하다는 것. 이 신경회로는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시기에 형성되지 못하면 나중에 아무리 언어를 배워도 영영 말을 하기 어렵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아이의 뇌 발달에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 이 결정적 시기에 아이는 부모나 주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적절한 자극을 받아야 뇌의 구조가 온전하게 갖춰진다.
04 “안정된 애착이 두뇌를 발달시킨다”
미국 베일러 의과대학 교수이자 아동 두뇌 발달 분야의 전문가인 브루스 페리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애착의 질이 두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 부모로부터 방치되어 자라거나 정서적으로 극심한 학대를 받아 혼란 애착이 형성된 아이들의 전두엽을 자기공명영상장치로 촬영했다. 그 결과 안정애착아의 전두엽과 달리 혼란애착아의 전두엽은 아예 처음부터 발달하지 않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브루스 페리 교수는 연구 결과를 통해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아이의 뇌가 아예 성장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두엽은 생후 6개월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는데, 자신에게 사랑을 보내는 이가 누구인지 기억하는 일, 기저귀를 갈아주는 손길을 감지하는 것 등을 담당한다. 즉 전두엽의 발달은 애착형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 연구 결과는 불안정 애착이 뇌 발달을 방해할 뿐 아니라, 뇌 손상까지 가져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05 “엄마와의 접촉이 최고의 두뇌 자극이다”
1967년부터 89년까지 루마니아를 지배한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단기간에 인구를 늘리기 위해 모든 종류의 피임과 낙태를 금지했다. 모든 여성에게 최소 4명의 아이를 낳게 했고, 이를 어기면 특별 세금을 내야 했다. 수많은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고, 10만 명 이상 아이들이 엄마의 냉대 속에서 태어났다. 게다가 당시 루마니아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고아원에 버려진 채 아무런 환경적 자극을 받지 못했다. 아이들은 하루 20시간 이상 침대에 누워 있었고, 돌봐주는 사람들은 여건상 아이를 일일이 안아주거나 만져줄 기회가 없었다. 목욕도 찬물을 호스로 끼얹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붕괴되고나서야 아이들은 끔찍한 고아원을 벗어나 미국·캐나다·영국 등지로 입양됐다.
캐나다에서 입양 후 4세가 된 루마니아 고아원 출산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이큐 검사를 실시했는데, 고아원에서 4개월을 채 지내지 않고 입양된 아이들의 평균 아이큐는 98, 19개월 이상 지내다 입양된 아이들의 평균 아이큐는 90에 그쳤다. 또래 캐나다 아이들의 평균 아이큐 109와 비교해볼 때 매우 낮은 수치다. 두뇌 이미지 촬영 결과도 더 나이가 많을 때 입양된 아이일수록 두뇌 크기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한 후에도 기억과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다.
영유아기 아이에게 부모와의 스킨십은 매우 중요하다. 스킨십은 곧 부모와 아이의 감정 교류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이의 뇌 발달에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 동물실험 결과만 봐도 스킨십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갓 태어난 쥐를 부드러운 브러시로 쓰다듬어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해보면 그렇지 않은 쥐의 뇌세포가 많이 죽는 등 뇌 발달에 이상을 나타낸다.
06 “IQ를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보다 자궁 내 환경”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정신과의 버니 데블린 교수는 IQ에 관한 기존 2백12건의 연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IQ를 결정하는 데 유전자는 48%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부모의 유전자가 조합되는 데 따른 시너지 효과까지 감안하면 실제 유전적 요인이 지능을 결정하는 비중은 34%에 불과하고, 오히려 인간의 지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자궁 내 환경’이라고 했다.
임신 중 음주나 흡연, 유해 물질에 노출되는 정도, 임신부의 스트레스로 인한 육체적ㆍ정신적 변화, 부족한 영양 상태 등이 자궁 환경을 해치는 주요한 요인이라는 것. 임신부가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해로운 환경을 멀리해야 한다는 우리 전통 태교 방식과도 맞물리는 연구 결과다.
태아의 뇌 발달 과정을 살펴보자. 지능을 결정하는 것은 세포와 세포 간의 연결고리인 시냅스가 촘촘히 연결되어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시냅스의 생성과 소멸은 태아의 뇌가 형성되는 시기인 태아기에 엄마 뱃속에서 얼마나 적절한 자극을 받았는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자궁 내 환경을 최상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07 “두뇌 발달의 핵심은 생후 3년간의 경험이다”
스코티시 테리어 종의 어린 새끼 개들을 어두운 곳에 가두고 모든 자극을 차단했다. 얼마 후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개들은 사람이나 다른 개들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핀으로 찔러도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지능검사에서도 경험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개들이 쉽게 푸는 문제를 매우 더디게 풀거나 아예 풀지 못했다. 이 실험은 생후 초기의 경험이 다른 어떤 시기의 경험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의 타고난 학습능력이 제대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생후 3년간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지속적인 경험이 제공되지 않아 사용되지 않는 시냅스를 솎아내는 이른바 ‘두뇌의 가지치기’가 활발히 이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때 풍부한 경험이 제공되면 필요 없는 시냅스만 가지치기되고 남은 시냅스의 연결은 더 견고해져 똑똑한 두뇌로 발달하지만, 경험이 차단된 경우에는 두뇌 발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 더 많은 정보는 <맘앤앙팡> 9월호 122p를 참조하세요.
매거진
[두뇌발달 100] 태아부터 세 살까지 뇌 발달이 평생을 좌우한다
2012년 9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