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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모태범의 엄마 정연화씨의 느긋한 육아_믿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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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 때 손을 짚고 섰던 아들은 7개월에 걸음마를 시작하더니 스물한 살, 생일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의 기대주 모태범의 이야기다. 태생부터 스포츠 영재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야구와 축구를 좋아하던 초등학생 아들에게 스케이트를 신기고, 쇼트트랙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를 권유한 것은 순전히 어머니 정연화씨의 혜안 덕분이었다. 자녀교육에 스포츠 정신을, 스포츠에 엄마의 애착을 더해 성공한 ‘태범이 엄마’의 스포츠 신동 국가대표 만들기 프로젝트.

아들을 빙상 스타로 키운 정연화씨의 육아 7계명

● 운동이든 놀이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면 한 번은 경험하게 해주자.
● 공부에만 목숨 걸지 마라. 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 엄마는 안다.
● 너무 감싸 키우지 마라. 엄마 품 밖에 아이를 풀어놓아야 아이의 재능을 찾을 수 있다.
● 어렸을 때부터 인사 습관만큼은 확실하게 가르쳐라.
● 방학 때만큼은 실컷 놀게 하자.
● 도전해야 할 때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어라.
● 다그치지 마라. 운동이든 공부든 조금 늦더라도 때가 되면 아이들은 결국 제 속도를 낸다.


2010년 2월 15일, 긴장감은 있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아침이었다. 하루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전화를 건 아들은 엄마에게 “생일날 500m 경기를 치르게 됐다”며 “느낌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선수 스스로도 1000m에 대비한 속도훈련이라 여겼고, 가족 모두가 ‘동메달이라도 하나 따오면 소원이 없겠다’고 염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모태범 선수는 500m에서 세계 랭킹 14위. 주종목이 아니었고 메달 후보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금메달을 딴 전례가 없었기에 그저 경기 중 다치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은 TV 앞에 모여 앉았다.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세계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아들이 결승 1차 시기에서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것. 그때였다. 집전화, 휴대폰 벨이 동시에 울려대기 시작했다. 집으로 오고 있다는 기자들의 연락이었다.

아버지 모영열씨와 어머니 정연화씨, 누나 은영씨는 급하게 세수며 단장을 하고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기자들을 맞이했다. 그날 모태범 선수는 우리나라 선수로는 최초로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주종목인 1000m에서도 은메달을 추가해 ‘모터범’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원 없이 울었어요. 밴쿠버에서 태범이가 전화를 했는데 ‘엄마 아빠, 이제 살맛 나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대견했고, 고마웠어요.” 어머니 정연화씨가 떠올릴 때마다 눈물을 참아야 하는 기억이 그때 만들어졌다. 가족뿐만이 아니다. 세계인이 놀랐다. 그 대회 이전까지 모태범 선수는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조차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대표팀 막내였을뿐 아니라 위로는 이규혁·이강석 등 쟁쟁한 선배들이 있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국 전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미디어 데이’ 때도 기자들로부터 단 한 개의 질문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단 한 명, 모태범 선수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고 있던 이는 바로 어머니 정연화씨였다.


소문난 동네 개구쟁이에게 즐거운 놀이를 찾아주다
“태범이를 임신했을 때 구렁이가 산을 감고 지나간 다음 가운데 시냇물을 건너는 태몽을 꾸었어요. 신기하게도 영유아 때부터 뒤집는 것도 빨랐고, 기는 것도 빨랐어요. 생후 6개월에 두 살 터울 누나와 사진을 찍어주려고 누나 옆에 기대 세워봤는데 다리에 힘을 주고 서더라고요. 그러더니 한 달 뒤 걷기 시작했어요. 호기심이 많아서 사고도 많이 쳤고, 다치기도 많이 했죠. 장난하다 얼굴에 페인트를 뒤집어쓴 적도 있고, 네 살 때 외갓집에서 쓰레기를 태우는데 태범이가 장난으로 돌을 던진 게 부탄가스 통에 맞아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그때 얼굴에 화상을 입어서 한쪽 눈과 입만 내놓고 미라처럼 붕대를 칭칭 감았는데, 그 모양새를 하고 어른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휘젓고 다니더라고요. 동네가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정연화씨는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아들의 장난을 크게 혼내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체력은 건강한 것이라 믿었고, 못 말리는 장난기도 사내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여겼다. 덕분에 모태범 선수는 세 살 때부터 엄마 품을 벗어나 밖에서 실컷 뛰놀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매순간 아들을 긍정했던 정연화씨에게 고민이 생긴 건 모태범 선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였다.

전풍성 코치 (초등 4학년 때부터 9년간 모태범 선수 지도)
“장난치다가도 운동만 시작하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어요.”

9년간 동고동락하며 지도자로서 모태범 선수에게 가장 많이 해준 말 격려도 많이 하고, 야단도 많이 쳤다. 빙상 선수들은 여름에 하계훈련으로 체력을 만들어놓고 그 체력을 바탕으로 겨울에 스케이팅 연습을 한다. 초등학생들이 소화하기는 훈련 양이 쉽지 않은 편이다. 힘들어 할 때마다 “가능성이 있으니 고비를 잘 넘기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태범이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 부모님께 승패에 대한 꾸중은 코치의 몫으로 남겨두고, 항상 아이를 감싸 안아주고 격려해달라고 요청한다.
국가대표 빙상 선수를 꿈꾸는 꿈나무들에게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지도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는 초등학교 시절이다. 초등학교 때 기초를 잘 배워두어야 한다. 예닐곱 살 어린 나이에 스케이트를 접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아직 골격 형성이 되지 않은 때라서 선수가 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취미생활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혹독하게 훈련하고 승부에 연연하기 시작하면 아이도, 부모도 빨리 지쳐버린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스케이트를 즐기는 마음과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야 이후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딜 수 있다.

“1학년 때는 괜찮았는데 2학년이 되고나니 도무지 공부에 집중을 못 하는 거예요. 고민 끝에 아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공부를 강요하기보다 잘하고 재미있어 하는 운동을 하게 해주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운동을 두고 고민했는데,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더라고요. 그중 스케이트에는 희망이 보여서 서울 어린이대공원 실내스케이트장으로 태범이를 데리고 갔어요. 스케이트장에 간 것도, 스케이트화를 신겨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태범이가 스케이트화를 신자마자 바로 빙판에 우뚝 서는 거예요. 저도, 지켜보던 코치님도 깜짝 놀랐죠. 그러더니 여유 있게 스케이트장을 한 바퀴 돌고 오더라고요.

스케이트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러 간 것이었는데, 되레 코치 선생님이 ‘이런 아이는 꼭 스케이트를 가르쳐야 한다’고 저에게 당부하셨어요.”우물쭈물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스케이팅은 빠르면 일곱 살 정도부터 배우기 시작하기 때문에 또래에 비하면 다소 늦은 출발이었다. 정연화씨는 본격적으로 스케이트를 가르치기 위해 스케이트부가 있는 은석초등학교로 아들을 전학시켰다. 모두가 의아해했던 건 당시만 해도 메달 가능성이 높았던 인기 종목인 쇼트트랙이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을 주종목으로 선택한 것이다. 모태범 선수가 실력을 발휘하면서 초등 5학년 때부터 크고 작은 대회에서 상을 휩쓸기 시작하자, 쇼트트랙으로 종목을 바꾸라는 주변의 목소리는 더 거세졌다.


초등학교 2학년, 스케이트화를 처음 신자마자 빙판에 우뚝 섰다던 모태범 선수. 그를 본 코치는 ‘꼭 스케이트를 가르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두 번의 위기, 두 번의 성장
엄마라서 정연화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속내가 깊었다. 쇼트트랙은 400m 트랙에서 경기하는 스피드스케이팅과 달리 111.12m의 짧은 타원형 트랙에서 펼쳐진다. 개인의 기록보다는 몸싸움과 작전계획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에 곡선 구간에서의 치열한 자리다툼이 순위로 이어진다. 그런데 정연화씨는 아들이 선의의 경쟁을 한 후에도 경기에 진 선수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할 정도로 마음이 여리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아들에게 동료와의 몸싸움을 권유할 수는 없는 노릇. 아들의 여린 성정을 간파한 엄마는 주변의 권유에 흔들리지 않았고, 이는 모태범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해결해야 할 난제는 또 있었다.

스키를 배운 첫날 중급자 코스에서 아찔한 활강을 할 정도로 담대함과 운동신경을 타고났지만, 딱 한 가지가 부족했다. 초등학생 재학시절 내내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키가 작은 것이었다. “3kg으로 태범이를 낳았는데 어려서부터 키가 작은 편이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정말 가방이 땅에 끌려 보일 정도였죠. 평소에도 입이 짧고 잘 먹는 편이 아니어서 늘 애가 탔어요. 스케이트 실력은 나날이 성장해가는데 중2 때까지 키가 160cm 중반이어서 코치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도리가 없으니 그냥 때가 되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정말 클 때가 되니 키가 저절로 크더라고요. 중3 때부터 고1 때까지 10cm 이상 훌쩍 자라주어서 걱정을 덜었죠.”

국가대표 금메달리스트의 부모가 된다는 것, 그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는 영예이고 보람이지만 그 낱낱의 과정은 가슴 졸이는 사건의 연속인 것이다. 타고난 운동 실력에, 실력도 출중했고, 키도 성장한 모태범 선수. 이제는 걱정 없이 운동만 하면 되겠다며 모두가 안도하던 시기, 모태범 선수에게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갑자기 운동을 안 하겠다는 거예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스케이팅을 시작한 이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학교 가고, 또 운동하는 삶이 쳇바퀴처럼 이어졌어요. 지칠 만도 했죠. 하지만 그동안 고생한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지켜볼 수만은 없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태범이를 지도해주시던 전풍성 코치님을 찾아갔어요. 코치님은 ‘그냥 놔두고 지켜보자’고 하시더라고요. 태범이를 믿고, 코치님을 믿고 아들의 방황을 그냥 두고 보았어요. 3주 동안 훈련도 나가지 않던 아들이 코치님과 대화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더니 결국 자리로 돌아오더라고요.” 스포츠도 그렇고 육아도 마찬가지. 매순간이 포기하고 싶고 타협하고 싶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통계를 바탕으로 예측 가능한 영역이지만, 무엇 하나 결코 예측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수없이 성공했다 해서 이번에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할 수 있는 건 인생을 스포츠처럼, 스포츠를 인생처럼 즐기는 것이다.


응원하라 아이를,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짧은 방황 끝에 모태범 선수는 “엄마가 금메달 좋아하니까 열심히 운동해서 메달 하나 따서 드리는 게 효도인 것 같다”며 2007년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500m 금메달을 획득해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승승장구는 계속됐다. 최근에는 지난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3~201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500m, 10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 최강임을 다시 한 번 확인, 이 상승세를 이어 2014년 소치올림픽 2연패 도전을 앞두고 있다.

추운 빙판 위에서 하루 종일 얇은 트레이닝복 하나로 버텨낸 탓에 사계절 감기를 달고 살아온 시간들,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하고도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저녁조차 마음껏 먹지 못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고단한 삶이 있고, 그런 아들 곁에서 일분일초의 노력을 웅숭깊은 시선으로 지켜보며 고단함을 나누는 엄마들이 있다. 윤제림 시인의 ‘재춘이 엄마’라는 시(詩)의 한 구절을 적어본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 같은 절에 가서 /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재춘아, 공부 잘해라!”다. 한마디 보태본다. “태범아, 스케이팅 잘 타라!”

아이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해주는 엄마

프로골퍼 박인비
정신력이 중요한 스포츠인 골프는 부모의 훈육과 교육법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 흔히 운동선수를 키우는 부모들은 무조건 강한 훈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운동선수로서 필요한 강심장은 키우면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스트레스를 받아 지쳐 있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혼내지 않았다. 아이가 불안해할 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대신 스스로 노력하도록 늘 옆에서 기다려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점을 눈감아준 것은 아니다. 정도를 지나친 행동을 하면 단호하게 혼냈다.

그녀의 엄마는 아이가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지 현재의 감정에 공감해주면서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낸 것이다. 이런 부모의 훈육 스타일 덕분에 박인비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침착하게 풀어낼 줄 알았다. 주니어 선수들은 골프공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거나 어려운 코스로 날아가면 자신도 모르게 당황하고 심적으로 흔들려 포기하기 쉬운데, 박인비는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까다로운 샷도 자신 있게 날렸고, 상대 선수에게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평정심을 찾았다. 이렇게 단련된 강인한 정신력 덕분에 ‘돌부처’ ‘평정심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완성된 것이다.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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