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쓸데없는 고집을 피워 열을 받게 한다.
신은 양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어제 입은 티셔츠는 입기 싫다느니 하며 군소리가 이어진다.
간혹 쓸데없는 고집을 피워 열을 받게 한다. 신은 양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어제 입은 티셔츠는 입기 싫다느니 하며 군소리가 이어진다. 간혹 쓸데없는 고집을 피워 열을 받게 한다. 신은 양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어제 입은 티셔츠는 입기 싫다느니 하며 군소리가 이어진다. 어린이집 등원하는 버스 시간에 쫓겨 마음이 급한데 아이의 고집 따위를 받아줄 여유는 없다. “내일은 마음에 드는 양말 신고, 티셔츠 입자”고 달래보지만 울면서 떼를 쓰면 특효약을 써야 한다. 무서운 얼굴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아이에게 말한다. “조용해. 오늘은 그냥 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가 시동도 걸기 전에 조수석에 자리를 잡은 아이에게 “앞자리는 위험해서 안 돼. 뒤로 가서 앉으세요”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본다. “오늘은 앞에 앉고 싶어”라며 한사코 고집을 피우면 결국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고집 피우지 말고 뒤로 가서 앉아!” 고백하자면 간혹 있는 일이 아니다. 꽤 자주, 꽤나 자주 있는 일이다.
아이는 내게 ‘협상의 상대’가 아니다. 아이의 안전과 교육과 관련된 일은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아직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 자신에게 최선의 것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아이를 존중하는 것과 쓸데없는 아이의 고집을 존중하는 것과는 다르다. 육아의 주체는 ‘아빠’,육아의 객체는 ‘아이’다. 나는 이것을 ‘사랑의 표현’이라 믿어왔다.
자, 이제 이런 방식의 사랑을 남자와 여자 간의 사랑에 대입해보자. 연애의 주체는 남자, 연애의 객체는 여자다. 남자는 어떤 것이 여자에게 최선인지를 안다고 믿고 여자를 협상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간혹 여자가 쓸데없는 고집을 피운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얼굴과 큰 목소리로 묵살해버린다. 이것도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남자와 여자 간의 사랑과 아빠와 아이 간의 사랑이 전적으로 같을 수는 없겠지만, 진정한 사랑은 상대와 소통하고 싶은 욕망에 기초해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결심이다. 문제는 사랑은 의지를 가진 두 주체의 만남이기 때문에 항상 어떤 종류의 갈등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고, 갈등을 해소하고, 갈등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사랑을 “매일 배워나가는 것”으로, “매일 창조하고 끊임없이 조정하는 노동”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내 파트너와 지금까지의 10년은 서로의 쓸데없는 고집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받아들인 시간이었다. 아, 정말이지 내 사랑은 노동이라 고되었다.
아이에 대한 내 사랑도 노동이라 할 수 있을까? 아이의 ‘쓸데없는 고집’에 무서운 얼굴과 큰 목소리로 대응하는 것은 사랑의 본질인 “매일 창조하고 끊임없이 갈등을 조정하는 노동”을 생략해버리는 방식인 건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의 프레임’ 대신 ‘육아의 프레임’으로 아이를 대해 왔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아이도 나와 마찬가지로 의지를 가진 주체로 보기보다 내 원칙을 따라야 하는 객체로 취급했다. 나는 ‘협상’ 대신 ‘지배’를, ‘사랑’ 대신 ‘관리’를 하고 있었다.
부질없고 쓸데없는 고집, 그것도 아이의 의지다. 고집을 부리는 아이에 대해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지난하고 고된 협상을 계속하는 방법, 그런 방법은 육아서에는 없다. 사랑은 육아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이건 사랑은 오직 사랑해야만 배울 수 있다. 아이와의 밀고 당기는 과정, 갈등을 창조적으로 조정하려는 지속적인 노동을 통해서만 매일매일 사랑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육아보다 어렵다. 사랑은 육아보다 고되다.

글을 쓴 권영민은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철학본색’이라는 철학 교육, 연구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 블로그(spermata.egloos.com)에 쓴 에세이를 모아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를 출간했다.
대답보다는 질문을 하고자하는 철학이 좋은 부모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일러스트 최익견 | 담당 장보임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