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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먼저 배운 아이가 행복할까?

댓글 3 좋아요 3 교육 13-24개월 25-36개월 37개월이상

“한국의 부모들은 유아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생각한다.” OECD 교육평가단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6세 이하 유아들의 교육 현황을 조사하더니 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발끈하고 싶은 심증과는 달리, 취학 전 딸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이웃 아이의 학습지를 염탐했던 물증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유아교육 전문가이자 유치원 원장으로 40년을 정통한 이기숙 교수가 정밀한 실험을 거쳐 검증해낸 조기교육의 속살을 들여다볼 때다. 이기숙 유아교육 전문가의 ‘적기 양육법’ 먼저 배운 아이가 행복할까?

 




먼저 출발한 아이가 정말 먼저 도착할까? 

“세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지금 자녀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한다고 생각하시 나요?’ 마지막으로, ‘이 두 질문 중 어느 질문에 더 신경이 쓰이나요?’ 부모상담을 할 때 제가 자주 묻는 질문이에요. 놀랍게도 대부분의 부모들이 두 번째 질문에 민감합니다. 조기교육은 사실 부모가 느끼는 막연한 양육 불안감에서 시작되는데요, 이 두 번째 질문에서 불안이 싹틉니다.”

 


이기숙 교수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40여 년간 유아교육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이화여대 부속 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으로서도 수많은 엄마들을 만나왔는데, 엄마들이 이 교수에게 끊임없이 묻는 것이 있었다. ‘언제부터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쳐야 하나요?’라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부모의 답변이 아이의 인생을 바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면 조기교육이 시작될 것이고, ‘아이가 글자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때’라는 견해를 갖는다면 적기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질문에 답하려니, 저도 한글 조기교육이 초등학교 공부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영유아기 조기교육이 학습에 효과적이라는 물증(연구 결과)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직접 연구팀을 구성해 읽기 능력과 어휘력 관련 사교육을 받은 만 5세 어린이들과 조기교육을 하지 않은 만 5세 어린이들의 초등학교 1학년 국어 점수를 비교해보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독해력, 논리력, 맞춤법, 관련단어 찾기 등에서 조기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평균점수는 49.25점, 조기교육을 하지 않은 아이들의 평균 점수는 50.86으로 차이가 없었어요. 이 아이들이 3학년이 되었을 때를 추적해 문자 해독 능력을 다시 검사했을 때도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어 능력 중에서도 좀 더 고차원적인 영역인 사실적, 추론적, 비판적 이해 능력은 사교육 경험이 없는 아이들의 점수가 더 높았다. 이후 5세, 초등 3학년, 중학교 1학년의 수학성적을 비교 조사한 연구에서도 조기교육과 학교 성적과의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유아기에 놀이 중심으로 생활한 아이들의 사회성·정서 발달 점수(109.9), 창의성 발달 점수(123.3)가 학습 중심으로 성장한 아이들의 사회성·정서 발달 점수 (91.7), 창의성 발달 점수(117.9)보다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조기교육이 아이의 성적을 향상시키는 궁극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팩트였다.



“유치원에서 수많은 아이를 만나는데요, 어려서부터 사교육을 많이 한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산만함이에요. 아이들은 자기 능력에 맞는 것을 할 때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는데, 조기교육은 아이에게 무거운 짐이에요. 어렵기 때문에 잘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거듭하다 보면 ‘나는 항상 잘못한다’는 것이 습관화돼버려요. 공부는 결국 집중력입니다. 공부하려는 힘이 중요한데 이런 패배감 속에서 집중력이 생길 리 없고 성취감을 얻기 힘들죠.”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의 경험에 40년간 축적한 노하우를 더하고, 연구로 검증한 증거들을 통섭해 이기숙 교수는 단 하나의 결론은 이끌어냈다. ‘유아기에는 먼저 출발한 아이가 먼저 도착하지 않는다’는 것. ‘조기에 빨리 가르치지 말고, 적기에 행복하게 가르치자’는 일침이다.

“조기교육은 아이의 발달 속도에 따른 아이의 흥미, 관심과 무관하게 특별한 목적을 갖고 일찍 가르치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 적기교육은 선행의 반대 말이 아니에요. 교육의 시기를 늦추자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진 고유한 성장눈금을 부모가 잘 관찰하고 내 아이에게 맞는 ‘배움의 적기’를 놓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때를 놓치지 말아야죠.”


아이가 원해서 조기교육을 시킨다고요?
다른 나라 엄마들은 언제부터 교육을 시작할까? 이스라엘 교육부의 초청으로 이기숙 교수가 한 달간 이스라엘 유치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교실에 글자 공부와 관련한 학습 자료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낯설었다. 교사에게 물어보니 “이스라엘에서는 유치원이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가르칠 것을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독일·핀란드·이탈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유치원에서도 글자교육을 금하고 있다. 독일은 취학통지서에 “댁의 자녀가 입학 전 글자를 깨치면 교육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을 정도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아이들은 기저귀를 차기 시작하면서부터 배워야 하는 걸까? 궁금하여, 이기숙 박사는 한국·중국·일본 3개국 부모들을 대상으로 양육 감정을 추적했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답변에서 우리나라 부모들의 점수가 가장 높았다. 동시에 ‘내가 지금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답변도 월등했다. 한국 엄마들의 양육 불안감이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이다.

“부모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아이가 어릴 때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고, 교육을 시키더라도 흥미 위주로 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도 ‘한글을 깨치고 영어로 대화할 줄 아는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와 그렇지 못한 상태로 입학한 아이 사이에서 생기는 자신감의 차이를 외면할 수도 없다’고 이야기하죠. 저도 아이를 키우며 똑같은 불안을 경험했어요. 조기 교육이냐, 적기교육이냐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자신의 양육철학을 점검해 보세요. 양육철학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다’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아빠, 엄마가 되겠다’는 신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기숙 교수는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는 원하지 않는데 아이가 원해서 억지로 시키고 있다’고 토로한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한번쯤 아이를 잘 관찰해볼 일이다. 아이들은 엄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민하다. ‘내가 어떻게 해야 엄마가 행복한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자.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적기교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가 바로 영유아 시기”라고 당부하며 “부모로서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유아기를 선물하고 싶은가요?”라고 마지막 질문을 내놓았다.

‘철들었다’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표현이 있다. 계절의 흐름을 아는 사람을 일컫는다. 농사를 삶의 근간으로 삼은 옛 어른들은 태양력을 이용해 24절기란 걸 만들어 사용했다. 농사는 자연의 변화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니 때에 맞춰 씨를 뿌리고 기르고 거두는 일을 순리대로 해내야 했다. 자식농사라고도 했다. 계절을 알 듯 사리를 분별하고, 때에 맞춰 내 아이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는 것. 적기교육에서 배우는 삶의 순리다.


성장 발달을 알면 ‘내 아이의 적기’가 보인다
발달은 신체의 위에서 아래로 진행된다
머리가 몸통이나 팔, 다리보다 먼저 발달한다. 신생아의 경우 머리를 들 수 있게 된 다음 가슴을 들고 팔 근육을 이용해 뒤집기를 시작한다. 그다음 앉고, 다리 근육까지 발달하며 기고 서고 걷게 된다. 몸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큰 움직임에서 세부적인 것으로 발달한다 몸통에서부터 팔, 손목, 손, 손가락 순서로 발달이 이루어진다. 크고 단순한 것에서 세부적이고 복잡한 것으로, 몸의 중심에서 말초로 진행하는 것. 신생아들이 딸랑이를 잡을 때 먼저 손바닥 전체를 사용하고 점차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물건을 잡는 이유다.

발달은 계속해서 일어나지만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발달은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진행되지만 그 속도는 영역에 따라 다르다. 신체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언어 발달이 급속도로 이뤄지는 시기가 있다. 예를 들어 신생아 시기에는 키와 몸무게가 크게 증가하고, 유아기에는 어휘력이 풍부해진다. 식욕이 좋아 잘 먹던 아이가 어느 순간 몸이 마르면서 잘 먹지 않는다면 ‘신장기’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발달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신체, 인지, 사회, 정서 등 발달의 각 영역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역동적인 관계다. 신체 발달이 빠른 아이는 주변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되어 인지, 사회성 발달이 촉진된다. 반면 언어와 인지 발달이 늦은 경우 어른들과의 안정적인 애착이 이뤄지지 않아 정서적 결핍이 나타날 수도 있다. 발달이 급속히 이뤄지는 결정적 시기에 적절한 자극과 환경을 갖춰주는 게 좋다.

아이가 호기심을 표현할 때 가르쳐라
그림책의 글자를 읽을 때 글자 읽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은 좋아하는 단어만 안다. ‘도깨비’라고 읽으면서도 도, 깨, 비 낱자를 따로 알지 못한다. ‘도깨비’라는 글자를 가르치는 바람직한 방법은 아이가 좋아하는 도깨비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고, 이 글자를 동화책 속에서 찾게 하는 것이다. 익숙해지면 “이건 도야. 비야. 깨야”라고 각 음절의 단어를 알려준다. 단, 아이가 글자를 읽었다고 해서 책의 내용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숫자에 관심을 보일 때
아이와 대화할 때 조금만 신경쓰면 수학적 사고를 높일 수 있다. 식사를 준비하며 식구 수대로 수저를 놓게 하고, 서로 다른 과일을 보여주고 ‘가볍다,’‘무겁다’라고 이야기 해주자. 과자를 먹으며 ‘동그라미’, ‘네모’ 등 도형과 관련한 어휘를 사용하면 언어능력뿐 아니라 수학적 사고력에 도움이 된다. 벽에 낙서를 할 때 쓰고 싶다는 신호다. 아이는 끼적거리는 단계를 통해 글자와 쓰기에 접근한다. 글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쓴다는 방향감각을 키워주자. 점을 연결시키는 놀이, 공 던지고 받기 등으로 눈 운동을 시켜주는 것도 좋다. 양치질, 신발신기 등으로 손근육을 발달시키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엄마 멘토 이기숙 교수와의 즉문즉답> 

Q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A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자신감 있고 밝은 친구에게 매력을 느껴요.”
아이들 세계도 나름의 질서가 있어요. 철저하게 또래집단을 형성하기 때문에 어른들 마음대로 ‘누구랑 놀아주렴’이라는 게 쉽사리 통하지 않죠. 소위 친구들 에게 인기 있는 아이들은 놀이에 참여할 때 먼저 친구들의 놀이를 관찰하다가 같이 놀아도 되는지 물어보고 놀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하게 확인하죠.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며 창의적인 제안을 하기도 하죠. 친구가 넘어졌을 때 ‘많이 아프겠다’고 공감할 줄 아는 정서조망능력도 뛰어나요.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따르는 친구를 좋아할 것 같지만 사실은 독창적으로 행동하고, 밝고, 자신감 넘치는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Q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행복한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능력을 가르치세요”
미국 일부 우수한 유치원은 입학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데요, 창조성과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는 괜찮지만 공격적인 아이는 입학을 거절당합니다. ‘다른 아이의 행복을 방해한다’는 이유 때문이에요. 적기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유아기의 사회성이에요. 다른 사람과 잘 지낸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또래집단에서 소속감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가장 먼저 부모로부터 사회성을 배워요.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부모에게 의지하고, 부모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애착 관계에서 사회성을 키워나갑니다.

Q “사춘기에도 친구처럼 사이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A “아이는 하루아침에 방문을 닫아걸지 않습니다”
소위 명문대학교라 불리는 곳에 강의를 나가보면 공부 잘하는 아이치고 엄마와 사이좋은 아이가 사실 드물어요. ‘엄마는 말만 하면 공부 공부, 나의 마음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호소합니다. 이것이 선행교육 붐으로 성장한 청년들의 현실입니다. 결단코 아이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방문을 닫아걸고 벽을 세우지 않아요. 유아기 때 부모의 양육철학이 그 첫 단추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소품협조 아베크나인, 쉬크브와 │사진 김기환(인물), 송상섭(세트)│진행 김경민(자유기고가)│담당 박효성 기자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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