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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빠, 제가 오빠가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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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두 번째 임신이지만, 둘째도 순산할 수 있을지, 건강한 아이와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했다. 한 번 경험해본 일이어서 기다림이 더욱 힘들고 지칠 때가 종종 있었다. 셋째·넷째를 낳는다고 해도 두려움과 설렘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의 두 번째 임신이 다른 점은 바로 ‘첫째’의 존재다. 세상 빛을 본 후 엄마 아빠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존재가 이제는 사랑을 나눠줘야 한다. 말이 나눠주는 것이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동생’이 태어났을 때의 충격은 배우자가 외도를 했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을까.

둘째를 기다릴 무렵 첫째인 아들 녀석은 말문이 신나게 트였다. 동생이 세상에 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엄마 아빠와는 다른 기대감과 불안감을 가졌던 것 같다. 돌아보면 더 많이 애교를 부리고, 더 많이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을 했다. 첫째는 틈날 때마다 엄마에게 휴대폰을 가져가 “하부(할아버지) 전화” “아빠 전화”를 외쳤다. 물론 대부분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지만 전화를 받는 입장에서는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했다.

둘째가 세상 빛을 보기 일주일 전, 첫째는 만삭의 엄마를 졸라 광장시장 나들이를 다녀왔다. 어김없이 녀석은 전화를 돌렸다. 다짜고짜 “아빠! 다음에 나랑 아빠랑 부침개 먹으러 가자. 재미있었어. 신기한 거 많았어! 엄마는 다음 주부터 병원에 있을 거래. 그러니까 우리 둘이 같이 가는 거다. 약속이야. 끊어”를 외치고, 정말 ‘뚝!’ 하고 끊었다. 세상 구경이 재미있었던 게다. 대신 만삭의 엄마는 더운 날 엄청 고생을 했단다. 아내에게 핀잔을 주자 “좀 있으면 한동안 같이 놀아주지도 못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첫째가 태어나고 세상의 모든 즐거운 일을 경험할 때에는 항상 엄마 아빠가 함께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빠 입장에서는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여섯 살인 지금도 여전하지만, 출근길마다 “나랑 놀자. 내 방에서 어디 가는데? 엄마는 힘들어서 나랑 많이 못 놀아줘. 어디 가는데?”라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문 앞을 막아선다. 처음엔 “회사 다녀올게” 하면 회사가 뭔지 몰라서 아빠를 놓아주었는데, 조금 큰 녀석은 ‘회사’라는 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가 나가서 해가 들어올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들 입장에서는 회사라는 곳이 아빠를 빼앗아 놓아주지 않는 나쁜 아저씨들이 바글바글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들고 아빠를 찾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는다. 둘째가 태어난 직후 아들의 전화는 더 많아졌다. 달라진 점은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끊는 것이 아니라, 영상통화로 꼭 눈빛을 교환하고, “다음엔 꼭 아빠랑 나랑 우리 둘만 같이 하는 거다! 약속이야”라는 말을 강조하고 다짐 받은 후에야 전화를 끊는다. 아들의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임신한 아내만큼이나 복잡한 심정으로 동생을 기다리는, 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첫째’의 마음도 알아줘야 한다. 이리저리 아빠의 역할은 늘어만 간다. 하지만 어쩌나 이게 숙명이고, 결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행복의 시작이다.

아빠 육아 전술 –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동생이 태어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대견한 첫째 아이.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따뜻한 말 한마디와 약속에서 시작된다. 수도 없이 “응~ 다음에”라고 했다면, 말 속에 담긴 뜻이 결코 ‘아빠랑은 못 하니 넘어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작은 약속이라도 아이는 기다리고 있다. 첫째의 푸념과 어리광은 곧 동생이 태어나면 한동안 엄마가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글을 쓴 <풋볼리스트> 김동환 기자는 낮에는 축구 전문기자로 현장을 누비고, 밤에는 에서 축구 경기 해설을 하고 있다. 첫째를 낳고 ‘임신한 남편’를 위한 처세서 <임신에 대처하는 유능한 아빠양성>을 출간한 후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담당 한미영 기자 일러스트 애슝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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