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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네 삶의 주인은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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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가르칠 때는 그 사람이 알지 못하게 가르치고, 새로운 것을 말할 때는 마치 금방 생각난 것처럼 말하라.”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말이다. 엄마 강주은은 아이와 수직적인 관계에서 훈계하고 가르치는 엄마가 되기 싫었다. 아이의 실수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대화를 통해 아이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발견하게 하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대화하다 한번씩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엄마의 경험을 툭툭 내뱉을 뿐이다. 수용 여부는 어디까지나 아이 몫으로 남겨둔 채. TV조선 <엄마가 뭐길래> 방송이 시작된 지 1년여가 지났다.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많은 엄마들이 “강주은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 많은 엄마들이 공감하고, 좋아할까 궁금했다.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엄마 사람’에 대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웰컴! 투 더 월드.” 막 태어난 아이를 안고 처음 했던 말이다. 낯선 한국땅에서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출산했다. 육아도 온전히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이와의 만남이 기대되고 설레었다. 아이가 어떻게 생겼을지, 어떤 성격일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등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먼 미래 모습까지 상상하며 아이와의 만남을 기다렸다. 나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아이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존경하고 동경하는 부모님의 양육 방식에 내가 꿈꿔온 엄마 모습을 보태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 적용하겠다는 생각에 꽤나 들떴었다.



✎ 이건 참 특별한 일이란다
“엄마, 사람들이 우리 몰라?” 한국에서 지내다 캐나다에 갔을 때 어느 날 큰아이가 이런 질문을 해왔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명 아빠 엄마로 인해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 아빠로 인해 가족에게 쉽게 맞닥뜨리는 상황들, 쉽게 얻는 것들, 특별한 호의에 대해 아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가장 두려웠던 것 중 하나였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다른 환경의 친구들을 만날 것이고,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환경을 경험할 텐데, 방법은 내가 중심을 잘 잡아주는 것뿐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지금 이 상황은 ‘특별한 상황’이다”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표현하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이 상황과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도 덧붙였다.

✎ 다른 사람을 따라갈 필요는 없어
한국의 많은 엄마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나의 아이들 교육법이다. 아이가 명문대에 입학하면 그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에게 뭔가 대단한 노하우가 있을 것만 같고, 뚜렷한 교육철학이 있을 거라 믿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특별한 비법’이 없다. 물론 사교육도 없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3 시기에 큰아이는 연극에 빠져 있었다. 당시 아이가 재학 중이던 외국인학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는데 운 좋게도 로미오 역을 맡은 것이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나 이 연극 해도 될까?” 나는 되물었다. “유성아, 너 이 연극 하고 싶니?”라고. 아이는 완벽한 로미오를 연기했고, 그해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나는 아이가 95점을 맡고, 1등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최선을 다하고, 마땅히 책임질 줄 알길 바랄 뿐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선택을 주는 연습을 하면 된다. 다른 엄마들 말에 휩쓸리지 말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전전긍긍하지 말고, “얘는 누구지?” “이 아이는 뭘 좋아하지?” “지금 이 아이가 바라는 건 무엇이지?”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아이를 가장 잘 아는 한 사람으로서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료만 챙겨주면 된다.



✎ 네가 존재한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였어
많은 부모가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아이가 자신들의 소유물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자유를 허하라”고 말하지만 아이의 자유는 100%, 온전히 아이 것이지 부모가 허락하는 게 아니다. 아이 안전을 핑계로, 부모로서 권위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아이 행동을 제한하고, 명령하고 강요하는 걸 볼 수 있다. 나는 훈계하는 엄마가 되기 싫었다. 아이를 갖고 다짐한 것 중 하나가 아이가 한 살이든 열 살이든 스무 살이든 한 인격체로 대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잃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큰아이와 아이가 두세 살 무렵 찍어놓았던 영상을 함께 보게 되었다. 영상을 보던 아이가 충격적인 표정으로 “엄마, 어떻게 비디오 속에서랑 지금이랑 말하는 게 똑같아?”라고 물었다. 영상 속 엄마가 두 살밖에 안 된 아이를 대하는 자세나 말투, 엄마의 친절한 화법이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놀라워했다. 스스로 다짐한 엄마로서의 자세를 잘 지켜온 것 같아 순간 뿌듯하고 뭉클했다. 또 그런 엄마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감동해준 아들에게 고마웠다.

✎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어
<엄마가 뭐길래> 방송 중에 큰아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아이가 열한 살 무렵, 엄마가 힘들다고 푸념하는 속마음을 듣고 혼란을 겪었다는 이야기였다. 한번도 힘든 내색을 한 적 없는 엄마라서 아이는 더 놀라고, 무척 불안했다고 한다. 당시 육아에만 전념하다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지친 상태였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들어온 어느 날, 아이와 마주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던 기억이 더듬어진다.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고,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해 어쩌다 엄마가 되었고, 쉼 없이 달려와서 많이 지쳤다고. 엄마도 좀 쉬고 싶고, 당장 휴가를 떠나고 싶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늘 긍정적이고 유쾌하던 엄마가 심각한 얼굴로 속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아이가 놀랄 만도 했을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 그날이 아들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는 하루로 남아 있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엄마 마음을 읽은 듯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는 8년 전 그때로 돌아가면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 지금 이렇게 행복한데. 그때의 나에게 전혀 불안해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동안 방송을 통해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의 의지는 온데간데없었다.

✎ 엄마는 아직도 어렵다
많은 사람이 나를 완벽한 엄마로 오해한다. 나는 지금도 양육이 어렵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이와의 소통은 늘 도전이다. 아이는 상상하지도 못하는 찰나 더 상상하지도 못한 선언을 하곤 한다. 엄마 때문에, 아빠 때문에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서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모든 선택을 아이에게 맡기고, 그에 따른 책임도 본인이 안고 가야 한다고 알려준다. 엄마 아빠는 그저 너희들보다 많이 가진 경험을 얘기해주고 공유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훈육이 필요한 순간에는 아이가 예상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더 여유를 갖고 초연하게 반응한다. 아이 입장이나 타당성을 먼저 들어주고 어떤 결과가 벌어질 수 있는지 함께 얘기하면서 아이 스스로 깨닫고 방향을 찾길 기다린다. 그리고 바란다. 나의 아이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의 여유를 갖길,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먼저 귀 기울이길.

나 역시 아이를 출산하고 모유 수유를 하며 밤을 지새우는, 그야말로 전쟁 같은 육아를 경험했다. 너무 힘든 날은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인가” 하며 자책한 순간도 있었다. 외로운 시간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 시기는 여자의 모습을 잃어가며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게 당연했다. 힘들어하는 엄마가 있다면 그냥 솔직해지길 바란다. 외롭고, 힘든 만큼 주변 사람에게 표현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 시간을 먼저 걸어온 엄마로서 감히 말하자면, 지금은 공감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은 곧 그리움의 시간이 되고, 아이가 엄마와 교감하고 성장하면서 그토록 힘들었던 육아에 대한 보상의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유성이 여덟 살, 유진이 세 살 때 캐나다 킬베이파크
아버지를 따라 두 살 때부터 캠핑을 다녔다. 토론토 북쪽에 위치한 킬베이파크는 우리 가족이 즐겨 찾던 캠핑 숲이다. 캐나다에 가면 남편과 아이들을 꼭 데려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 중 하나다. 지금은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힐링’ 장소다.




3년 전 여름, 드라이브 중
우리 부부는 드라이브를 즐긴다. 아이들 역시 그랬었는데 어느정도 크고서는 엄마 아빠가 드라이브 가자고 하면 바쁘다고 거절하고, 귀찮아할 때도 있다. 이날도 ‘가자, 가자, 가자’ 열심히 아이들을 설득해 드라이브에 성공했다. 참 소중한 시간.




힙합 전사로 변신한 네 살 유성이
아이가 어릴 때 코디를 해주며 즐거움을 느꼈다. 이날은 유성이를 힙합 스타일로 코디하고 만족스러워 기념촬영을 했다. 열심히 꽈배기를 먹고 있던 유성이가 엄마의 성화를 귀찮아하며 카메라를 응시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유성이 여섯 살, 유진이 돌 무렵 아빠와 함께
아빠가 작품에 들어가면 촬영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는 더 열심히 놀아주곤 했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뒹구는 세 남자가 너무 예뻐 사진으로 남겨뒀다.




둘째 유진이가 태어나 처음 맞이한 설날
유진이의 첫 설을 기념해 아이들에게 고운 한복을 챙겨 입혔다. 개구쟁이 같던 유성이가 막 일어서고 걸음마를 시작하던 동생을 살뜰이 챙기며 의젓한 형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운 옛날 집에서 두 살 유성이
결혼해서 처음 정착해 7년을 살았던 집이다. 첫째 유성이가 나고 자란 곳이라 유성이와의 추억이 더 많다. 한강이 보이는 거실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소파에서 뛰어내리고 뛰어오르던 개구쟁이 유성이.




3년 전 필리핀 세부 가족여행 중
가족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스포츠가 스킨스쿠버다이빙이다. 1년 전, 자격증이 없어 스노클링만 하던 막내 유진이까지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가족 모두가 스킨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를 함께 하면서 우리에게 더 끈끈한 무언가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유성이 아홉 살, 유진이 네 살 때 등교하던 모습
엄마가 동생을 부탁하자 말로는 툴툴거리면서도 동생 손을 꼭 잡고 걸어간다.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사진 중 하나인데 볼 때마다 행복하고 뭉클하다. 아이들의 저 예쁜 모습을 더 많이 남겨두면 좋았을 걸 싶다.


패션 스타일링 장성희ㅣ헤어 강수인ㅣ메이크업 권성정ㅣ의상협조 포튼가먼트, 유니클로×카린 로이펠트ㅣ사진 김형식ㅣ진행 박선영 기자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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