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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이 그림을 수놓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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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디자이너다. 어린 아들은 아빠에게 영감을 준다. 아빠는 세상 모든 아이가 아티스트라고 믿는다. 아이가 그린 선 하나, 색 하나에도 감동할 줄 아는 아빠는 ‘마음드로잉’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고, 아이가 그린 그림으로 디자인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마음드로잉 이달우 대표는 아들 상민이가 그린 그림이 흥미롭다. 무엇을 그렸는지 명확히 알 수 없을 땐 묻기도 한다. 아빠는 묻지 않으면 알 수 없었을 아이 그림의 의미에 놀라고, 아이만이 가지는 표현력과 상상력에 재미를 느낀다. 일곱 살 아들은 디자이너인 아빠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마음드로잉의 시작도 아들 상민이의 그림이었다.

“일본에 갔다가 무인양품 매장에 들렀는데, 아이 손그림을 손수건에 수놓는 자수 서비스가 있었어요. 상민이 그림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기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국내에서도 비슷한 곳을 알아봤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어요. 손그림을 자수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아빠는 아들의 예쁜 그림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고, 주문이 어렵지 않으면서 아이 그림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딸기가 좋아’ 윤원 대표와 함께 마음드로잉을 시작했다.

주문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내거나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면 디자이너가 아이 그림을 컴퓨터에서 다시 그린다. 포토샵, 일러스트 등 작업을 거쳐 자수 프로그램에 입력한 후 캔버스 가방에 찍어내면 1주일 안에 아이 그림을 수놓은 가방이 완성된다. 그림의 선과 색을 일일이 컴퓨터로 다시 옮기는 수고로움 덕분에 아이 그림의 세세한 부분까지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어 엄마들의 만족도가 높다.

“홈페이지에는 제작법이 간단하게 나와 있는데 꽤 힘든 작업이에요. 하지만 마음드로잉은 저와 팀원들이 만드는 게 아니에요. 아이와 엄마들이 함께 만들죠. 엄마들이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며 시도 때도 없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도 팀원들이 한숨 한 번 내쉰 적이 없어요. 오히려 자기가 부모라도 궁금할 것 같다며 그 마음을 알아줘서 고마워요.”

마음드로잉은 아이만을 위한 브랜드는 아니다. 엄마를 위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아이 그림이 담긴 가방을 엄마가 쓰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 어떤 명품 백보다 더 가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현재 마음드로잉에선 엄마와 아이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캔버스 백과 미니 가방, 배지, 열쇠고리 등을 주문할 수 있다. 부모가 되어야 가질 수 있는 아이의 소중한 그림. 부모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그 가치를 아빠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 아이 그림이 예술이다
이달우 대표는 유독 아이와 인연이 깊은 디자이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딸기가 좋아’, 동대문 ‘플레이 스케이프’, 삼성동 코엑스 ‘라운지 P by 뽀로로’가 그의 작품이다. 아이를 위한 공간을 디자인하던 그가 아이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드로잉은 ‘세상 모든 아이는 아티스트’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누가 봐도 어설픈 그림일지라도 아이 그림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이냐 아니냐는 어른의 시선일 뿐이다. “상민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한 번도 ‘잘했다’ ‘예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아이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지, 칭찬받거나 자랑하려는 게 아니거든요.

상민이가 불을 뿜는 나무를 그린 적이 있어요. ‘마그마 나무’래요. 그 생각이 웃기잖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재밌다’고 말해주고 그냥 웃었어요. 근데 그 그림을 보고 한 전문가는 아이한테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그린 ‘마그마’가 분노를 표현하는 거래요. 물론 그 해석도 일리는 있지만, 저는 아이 그림을 굳이 평가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아홉 살 서연이가 그린 까만 오리도 마음드로잉의 가방에 담겼다. 실제 그림 크기는 가방 사이즈를 훌쩍 넘길 정도로 크다. 서연이는 몇 달에 걸쳐 오리 그림을 완성했다.



어른들은 서연이에게 왜 오리를 그렸냐고 물었고, 서연이는 주제가 동물이라 오리를 그린 것뿐이라고 답했다. “서연이의 대답이 작가스럽지 않아요? 오리에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그린 게 아니에요. 저라면 어느 정도 가공해서 답했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그림으로 표현할 줄 알아요. 세상 모든 아이는 아티스트예요. 오리를 그리고 싶어서 그렸다니, 얼마나 멋있어요?” 선 하나에도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건 아이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의 방식이다. 마음드로잉은 아이 그림으로 ‘아이는 아티스트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사람들은 아티스트를 존중해요. 떠받든다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라고 하면 작품이 난해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잖아요. 아빠로서 아이 그림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으로 마음드로잉을 시작했지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음드로잉은 상업적인 브랜드지만 동시에 상업적이고 싶지 않은 하나의 프로젝트이기도 해요. 마음드로잉을 통해 우리가 아이를 존중하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거죠.” 달랑 줄 하나 그은 그림도 부모에겐 행복일 수 있다. 아이가 잘 그려서 행복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아이가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마음드로잉은 당분간 이 메시지를 지키려 한다. 그 표현의 수단이 가방이나 배지일 뿐이다.



✎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다
아이를 존중할 줄 아는 아빠도 두 아이의 아빠 노릇은 쉽지 않다. 평소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지만, 매주 토요일만큼은 온종일 아이와 함께한다. 상민이와 나무로 스케이트보드를 만들어 동네 골목길을 달리고, 수퍼에서 얻어온 박스로 텐트나 기지를 만들기도 한다. 근사한 장난감은 아니지만 아빠와 상민이는 늘 즐겁다. 아내의 도움도 컸다. 아빠가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는 이유를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느라 바빠서”라고 말하기보다 “너희들도 좋아하는 것이 있듯이 아빠는 일을 즐거워한다”고 설명해주는 아내 덕분에 아빠의 부족한 자리가 어느 정도 채워지고 있다. 대화가 없는 가족이 되고 싶지 않은 아빠는 단 하루지만 아이와 놀이를 하며 아빠로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전한다.

“상민이랑 만드는 로켓 모양 스케이트보드 이름이 ‘리틀 로켓’이에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아이들은 일상에서 전쟁을 경험하잖아요. 저는 상민이가 보드를 만들고 가지고 놀면서 자신이 전쟁 없는 나라에서 사는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베풀며 살길 바라요. 교육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이런 저의 마음은 시간이 흘러야 아이가 이해하겠지만, 당장은 해주고 싶은 말을 놀이로 표현하는 거죠. 언제,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이 몫이에요.” 마음드로잉으로 아이를 존중하는 법을 세상에 전하듯 아빠는 자신이 디자인한 공간과 제품, 일상의 놀이로 상민이를 비롯한 세상 모든 아이에게 말을 건다. 상민이도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전하기도 한다. 최근 한 미술관에 설치하는 탱크 모양 미끄럼틀도 상민이 그림에서 시작했다. 탱크에서 총알 대신 하트가 쏟아지면 좋겠다며 그린 탱크 그림이 아빠의 마음을 움직였다.



“상민이의 그림, 단어, 행동이 다 영감이 돼요. 일부러 찾지는 않아요. 자연스레 감동을 받는 포인트가 있거든요. ‘딸기가 좋아’의 수박 정글짐도 상민이가 수박 안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수박이 좋다는 말에서 시작한 것처럼요.”

✎ 아빠의 디자인은 계속된다
아빠와 아들은 앞으로도 좋은 친구이자 영감을 주고받는 파트너로 관계를 쌓아갈 참이다. 2015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상민이 그림으로 만든 와펜으로 신발을 디자인해 선보였던 아빠는 마음드로잉이 좀 더 자리를 잡으면 신발 제작을 시도해보려 한다. 올겨울엔 약 봉투 제작을 고민하고 있다. 마음드로잉 외에도 아이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가 줄줄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가끔 상민이가 일요일에 사무실로 놀러 와서 가만히 저를 지켜보다 물어요. ‘아빠, 일이 재밌어?’ 그렇다고 말하면 ‘이렇게 앉아만 있는데 진짜 재밌어?’라며 또 물어요. 그러면서 저를 조금씩 이해하는 것 같아요. 20년쯤 지나면 엄마 아빠가 일을 하면서 자기를 어떻게 키웠는지 알게 되겠죠.”



아이들이 어디서든 잘 논다고 믿는 아빠는 어른이 정한 콘셉트 대신 아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아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담은 공간과 제품을 만들려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무한한 상상력을 즐기며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세 살인 딸 하림이가 요즘 선을 긋고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딸과 아들은 좋아하는 게 서로 다르더라고요. 제가 아직까지 핑크색을 써본 적이 없는데, 아마 다음 작업에선 핫핑크나 레이스, 큐빅이 등장할지도 몰라요.” 아빠의 디자인은 두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사진제공 마음드로잉 사진 이지아 윤세은(자유기고가)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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