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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살아보라, 밥이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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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 보이지 않아서, 요리 과정이 호락해 보이지도 않아서 늘 한 귀로 흘려보냈다. ‘자연식’이란 채소 뿌리를 우적우적 씹고, 들기름 한 스푼 꿀꺽 삼킬 수 있는 사람들의 영역인 듯해서 부럽기보다 유난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배우 문숙이 차려낸 자연식 밥상을 마주하고 우리는 함께 웃는다. 예뻐서, 맛있어서 내 몸을 돌보려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 경험이 진귀하다. 봄 따위는 오지 않아도 좋았다.




요리하기 쉬워야 자연식이다  
“왜 음식을 약으로 먹어요? 맛으로 먹어야죠. 건강 생각한다고 채소 뿌리 우적우적 씹어 먹을 필요 없어요. 뿌리로 채소 국물을 우리면 맛도 나고 세련되게 먹을 수 있으니까요. 희귀한 약재로 생소한 음식 만들어 먹는 게 자연식이 아니에요. 매일 먹던 흰 빵 대신 통곡물빵을 먹어보는 것도 자연식이죠. 버터 대신 깨를 갈아 만든 참깨버터를 빵에 발라 먹어보세요. 코코넛오일로 달걀프라이도 해보고요. 익숙한 흰쌀 대신 통현미를 불려 밥을 지어보고, 불길이 닿지 않은 채소 한 접시를 밥상에 무심하게 놓아보는 겁니다. 늘 먹어온 음식들을 좀 더 본연의 맛과 기운을 살려 먹는 게 자연식이에요.” 봄볕이 푸지게 내려앉은 날이었다. 이화동 벽화골목 인근 작은 주방에서 밥을 안치고 방울토마토를 데치며 두부를 지지던 배우 문숙은 “대관절 자연식이 뭔가요?”라는 질문에 망설임도 분주함도 없이 답했다. 우리는 그냥 넋을 놓았다. 카메라 앞에서의 얼굴과 주방에서 다섯 가지 메뉴를 동시에 요리하는 그녀의 표정이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가스레인지가 말썽을 부려도, 어쩐 일인지 유기농 방울토마토가 탱글하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아” 서그럽게 되뇌며 배우 문숙은 서양식 자연식 5코스를 차려냈다.

하룻밤 불린 통현미와 현미찹쌀을 8대 2 비율로 담고 채소 국물을 부어 다시마 1개와 콩을 넣고 1시간 동안 느긋하게 지은 통현미밥 / 콜리플라워와 감자, 소금 한 꼬집 넣고 끓인 후 핸드블렌드로 갈아 만든 수프 / 올리브오일에 레몬즙을 넣고 휘휘 저은 다음 메이플시럽과 후추를 뿌려 완성한 드레싱과 어린 채소 / 데친 아스파라거스와 방울토마토에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추를 뿌린 웜샐러드 / 마지막으로 냄비에 꼬마병 포도주스 두 개를 붓고 따끈하게 끓이다가 배와 시나몬, 계피를 넣고 뭉근하게 졸인 디저트가 식탁을 채웠다. 그 맛이 늘 생경했던 콜리플라워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방울토마토조차 그녀의 손을 거치자 본래의 가장 정확한 맛을 드러냈다. “음식은 자체 영양소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까지 먹는 일이기에 과정이 간편해야 한다”는 그녀의 지론처럼, 모든 메뉴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손쉬웠다.



밥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스무 살에 영화계에 데뷔해 백상예술상 영화부문 신인상과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탄탄대로를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홀연 미국으로 건너 가 서양화를 배우며 화가로 변신했던 그녀. 그런데 원인 모를 두통과 우울증, 시력 저하에 시달리다가 명상과 요가를 시작했고,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산속에서 매일 14시간씩 요가와 명상 수련을 하며 통증에서 벗어났다. 명상을 통해 음식의 중요성을 깨달은 배우 문숙은 뉴욕 맨해튼의 자연치유식 요리연구원에서 공부해 조리사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끔찍한 통증이 우리가 ‘몸’이라 부르는 곳이 ‘영혼이 깃들어 살고 있는 작고 성스러운 보금자리’임을 일깨워준 것이다.

“태아는 아주 작은 몸으로 태어나죠. 뱃속에서 엄마가 먹은 음식들로 만들어진 몸입니다. 지금 우리 몸은 온전히 내가 선택해서 먹은 음식들로 만들어진 몸이에요. 요즘은 음식이 오락이고 취미인 시대가 됐어요. 맛있는 음식을 찾아가 맛보는 재미도 즐겁지만, ‘내가 먹는 음식이 나’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 엄마들도 힘든 육아로 불안과 우울감을 느낄 때 흰 밀가루 같은 단순 탄수화물, 커피 같은 자극성 음식은 삼가는 게 좋아요. 먹으면 바로 기분이 좋아지지만 금세 다시 기분이 가라앉고, 그러면 다시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평정심을 주는 현미밥과 홀푸드(Whole foodᆞ자연적인 상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통음식)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요.” 안 하고, 덜 하며 느긋하게 시간을 담아 만드는 자연식 밥상은 우리에게 천천히 가라고,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건다. 이 소중한 밥상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엄마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마트에서의 전쟁에서 지지 말자”는 것이다. “엄마들이 어떤 물건을 구입하면 그 기업을 키우는 겁니다. 여자들이 구입하지 않으면 남자들은 만들지 않아요. 엄마가 구입하는 물건이 남자들의 운명까지 결정하는 셈이죠. 내가 구입하는 물건 또한 나 자신이에요. 건강을 해하는 식품과 나쁜 상술에 속지 마세요. 우리도 정말 좋은 음식은 가족과 나누어 먹죠? 수입 식재료들은 그 나라에서 가장 품질 나쁜 제품인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고 농작물을 직접 키워 먹을 순 없으니 작고 진실하게 농사짓는 소작농 물건을 구입하세요. 마을에 직거래 장터가 없다면 구청에, 시청에 전화해야죠. 밥상이 달라지면 가족의 생각이 달라지고, 인생관이 바뀌어요. 그러면 분명 사회도 더 건강해질 겁니다.”



자연식을 시작하기에는 요즘이 최적기다. 자연요리전문가 문숙에 의하면 “봄은 디톡스의 계절”이라는 것. “다이어트를 하려면 3월 춘분을 시작으로 5월까지가 적기다”라며 “같은 노력을 해도 가을보다 훨씬 효과가 좋을 테니 초록색 순을 많이 먹어보라”고 귀띔한다. 그 말에 또 신이 나서 활짝 웃는 봄이다.






바꾸면 자연식이 된다 밥·국물·기름·물

채소 국물
모든 요리의 시작은 국물 내기예요. 자연식에서도 채소 국물(미르포아· Mirepoix)이 중요한 역할을 해요. 밥을 지을 때도 넣고, 크림소스에도 넣는 등 다양하게 활용하죠. 국물을 만들 때 정해진 법칙이 있어요. 양파·당근·셀러리를 2 : 2 : 1 비율로 넣고 끓이는 거죠. 같은 크기로 대강 썰어서 찬물에 넣고 뚜껑을 연 채 1시간 이상 서서히 끓이세요. 소금은 넣지 않아요. 채소를 올리브오일이나 코코넛오일에 살짝 볶은 후 끓여도 됩니다. 올라오는 거품은 10~15분마다 걷어내세요. 그렇게 우린 국물은 냉장고에서 3~4일간 보관할 수 있어요. 기호에 따라 찬물에 다시마와 표고버섯을 넣고 끓인 채소 국물도 만들어보세요.
채소 국물을 끓일 때 주의 점 붉은빛을 내는 비트와 셀러리 잎 등 쓴맛 나는 채소는 피할 것. 채소 국물은 산성화된 몸을 알칼리화해주고 디톡스 효과가 있다. 감기 몸살 기운이 있을 때 마셔도 좋고, 이유식 국물로 활용해도 좋다.

통곡물밥
서양식 밥상에서는 단백질이 주인공이어서 쇠고기나 닭고기, 생선 중 하나를 중심 메뉴로 정하고 식단을 구성해요. 한국인 밥상은 찌개, 전골 등이 메인이죠. 자연식 밥상에서는 통곡물과 콩 등 밥이 주인공이에요. 특히 통곡물은 싹을 품고 있는 씨앗이에요. 저는 통현미와 현미찹쌀을 8대 2 비율로 섞어서 밥을 하는데, 압력밥솥에 하건 냄비밥을 짓건 45분~1시간 정도 서서히 익히는 것이 포인트예요. 밥이 다 된 후에도 기운이 가라앉도록 10~15분 정도 놔두었다가 뚜껑을 열어요. 현미밥은 소화가 안 된다고도 하는데, 현미는 씨를 보호하는 보호막을 없애야 부드러워요. 반드시 하룻밤 불리는 이유죠. 통곡물을 불리면 불리기 전보다 영양이 풍부해져요. 순을 틔운 것과 같은 이치죠. 밥을 지을 때도 채소 국물을 사용하는데 통곡물은 1.5배, 쌀은 같은 분량을 넣으면 됩니다.
몸에 더 좋은 밥 짓기 밥을 지을 때 톳이나 다시마 한 조각을 넣어보자. 산성인 쌀의 성분을 알칼리성으로 만들고 소화도 돕는다. 소화기관이 약하면 생강을 한 조각 넣자. 또 밥을 오래 씹으면 침 속 아밀라아제 성분이 밥을 알칼리성으로 만든다.

올리브오일
액체 상태인 기름(불포화지방산)은 오메가 9, 오메가 6, 오메가 3으로 나뉘는데 숫자가 낮을수록 더 불완전하고 쉽게 산화됩니다. 참기름·해바라기씨유 등 실온에서 액체인 기름은 대부분 오메가 6예요. 올리브오일은 오메가 9여서 가장 안정된 기름인 셈입니다. 좋은 올리브오일은 그 자체로 셰프죠. 샐러드에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열을 가하는 음식이나 베이킹할 때는 일반 올리브오일을 사용해요. 고체 상태인 기름은 돼지기름, 버터 등 동물성 포화지방산과 코코넛오일 같은 식물성 포화지방산이 있어요. 고온에서도 안전하게 조리할 수 있지만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아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조절이 필요합니다.
올리브오일 선택법 좋은 올리브오일은 플라스틱에 담지 않는다. 검은 유리병에 담긴 것, 뚜껑을 와인병처럼 막은 것을 구입하면 된다.


생수가 기본이에요. 끓여 먹는다면 생강과 레몬이 언제나 좋죠. 물을 붓고 우려도 좋아요. 유기농 제철 과일을 구입했다면 남은 껍질을 말렸다가 살짝 덖은 후 물을 붓고 끓여 먹어보세요.
디톡스 차 만들기 레몬은 얇게 썰고 생강도 껍질을 벗기고 채 썬다. 유리병에 레몬·생강을 담고 심황(울금), 카이안 고춧가루 약간, 현미 조청이나 단풍나무 시럽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차가 약간 따뜻한 정도로 식으면 컵에 부어 마신다.



인터뷰 속 장소 김명희의 부엌
이화동 벽화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부엌’. 부엌을 운영하고 있는 요리연구가 김명희는 이 공간을 단순히 다이닝이 있는 박물관이 아닌 문화와 예술, 철학과 삶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부엌을 찾는 사람들이 풍성한 밥상과 함께 이곳을 감상하고, 머무는 동안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낙상성곽서 1길 18-26 예약문의 02-745-2019

장소제공 김명희의 부엌 사진 박종범 김경민(자유기고가) 

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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