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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건강한 밥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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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를 만드는 데 드는 품은 상대적이다. 하지만 먹어보면 안다. 요리하는 이의 품이 많이 들수록 입은 즐겁고, 몸은 건강해진다. 집이 아니어도 건강한 밥을 먹을 수 있다. 자신만의 요리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지은 건강한 밥상을 찾았다.


믿음직한 재료로 만든 밥, 프란로칼


부부의 꼼꼼하고 정직한 성정이 묻어나는 오픈 키친


구석구석에서 봄꽃을 볼 수 있다.


디저트에 쓰는 달콤한 양평 딸기


어느 때고 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프란로칼 내부

아뮤즈 부셰가 테이블에 올라오면 지금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뒤이어 나오는 요리 모두 마찬가지다. 엄현정·홍대선 셰프 부부는 양평에서 세 번째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그 계절에 가장 맛있는 로컬푸드로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프란로칼’에는 봄 기운이 가득하다. “음식의 맛은 재료가 반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재료는 안 쓰는데, 그 기준이 좀 까다로워요. 생산자가 양심적으로 키우고, 최소한의 유통 과정을 거쳐야 해요. 프란로칼의 음식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료는 제철 로컬푸드밖에 없어요.”

상수동과 한남동·청담동 등 미식의 최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듯 치열하게 일해온 부부는 지난여름 서울을 떠나 양평에 안착했다. “농산물이 다양한 지역이고, 한우나 해산물 등 재료마다 산지와의 접근성도 좋아요. 서울에서 1시간 남짓 걸리면서도 한적하죠. 그래서 마음에 들었어요.” 덕분에 디저트엔 양평에서 자란 딸기가, 파스타와 샐러드엔 직접 키운 채소와 봄꽃이 들어 있다. “이 꽃들 한번 드셔보세요. 교나랑 알파파라는 봄꽃인데, 저희가 키운 거라 그냥 먹어도 돼요. 알파파는 향부터 너무 좋지 않아요?” 태어나 처음 먹어본 꽃 맛은 한여름 단맛이 가득 든 수박을 닮아 있었다. 부부는 매주 근처 작은 농장을 찾는다. 요리에 쓸 꽃과 허브, 베이비 채소를 키우고 수확하는 시간이다.

“시장에서 사거나 납품받아 쓰는 채소와는 향이나 수분 함량부터 달라요. 시장에선 구할 수 없는 재료를 쓰는 재미도 있고요. 흙 냄새, 풀 냄새도 좋아요.” 좋은 식재료에 대한 고민은 지난 2월, 한 달간 스페인과 포르투갈 미식 여행에서도 이어졌다. 특히 부부의 롤모델인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아사도르 에체바리’에서 어떤 요리를 하고, 어떤 셰프가 되고 싶은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레스토랑이 있어요. 버펄로를 직접 키워서 모차렐라 치즈를 만드는데, 재료를 구하는 이런 방식이 참 좋더라고요. 언젠가는 저희도 양평보다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농장을 만들고 요리하고 싶어요.”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셰프의 역할을 고민하던 부부는 양평에 안착하면서 여유를 찾았고, 그 여유는 온전히 좋은 재료를 찾는 데 쏟고 있다. 프란로칼이 정의하는 건강한 음식은 과정이 투명한 식재료다. 계절마다 양평을 찾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메뉴 런치 5코스 3만~6만원, 디너 7코스 7만~10만원
운영시간 화~토요일 12:00~15:00, 17:00~21:00, 일요일 12:00~17:00, 월요일 휴무, 디너 예약 필수
주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로 819
문의 031-773-7576


어르신의 정성을 담다, 소녀방앗간


건나물, 발효장, 발효청 등 소녀방앗간에서 파는 청정 재료들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영양이 깊어지는 건나물로 차린 밥상

보들보들한 산나물을 손으로 하나하나 뜯어 바싹 말린 후 삶고 데치고 버무려 테이블에 올린다. 요리에 쓰는 건나물 50g을 만들려면 그 10배가 넘는 생나물이 필요한데, 산에서 수확하는 데만 3시간, 다듬고 삶고 말리는 데 드는 시간이 12시간이다. 경북 청송의 어르신 한 분이 15시간에 걸쳐 완성한 건나물은 전국 여덟 군데 소녀방앗간에서 맛볼 수 있다. ‘소녀방앗간’ 김민영 대표는 키우는 정성은 물론 맛과 영양이 가득한 청정 재료라면 사람들을 위로하는 밥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산에서 직접 채취한,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좋은 산나물이에요. 먹어보면 그 진가를 알 거란 생각에 소녀방앗간을 시작했어요. 재료가 좋으면 음식은 맛있으니까요.” 설탕이나 조미료 대신 발효장과 발효청으로 맛을 낸다. 소녀방앗간은 자연에서 난 청정 재료를 그대로 테이블에 전달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시작은 유통업자의 이윤만 남기는 불합리한 구조 대신 좋은 재료라면 정당한 값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생산자를 위해 시작한 일은 소비자에게도 좋은 일이 되었다. 건강한 밥상을 완성하는 건강한 순환이 시작됐다. 메뉴판엔 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도록 생산자의 이름을 써놓았다. 황태한 어르신의 고춧가루가 매콤한 제육볶음을 완성하고, 청송방앗간에서 짠 참기름이 참명란비빔밥에 고소한 맛을 더한다. 이름도 예쁜 김주리 할머니의 짭조름한 수제 무장아찌는 불고기밥에 올라간다.

“소녀방앗간식 인증 마크예요. 이름과 양심을 걸고 정성으로 키웠다는 의미죠.” 청송을 비롯해 전국 산지에서 키운 건강한 재료로 작년 한 해 200여 가지 반찬을 만들었다. 그날 가장 맛있는 제철 식재료로 만드니 반찬은 매일 달라진다. 언제 먹어도 ‘집밥’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자취하면서 끼니를 대충 때울 때마다 저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다 오랜만에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먹으면 정말 행복했죠. 집밥은 내가 건강하길 바라는 엄마의 사랑이 들어 있어서 맛있잖아요. 밥 한 끼에도 누구나 자신이 배려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건강한 밥 대신 사진 찍기 좋은 화려한 밥이 많아지고, ‘멋집’에 가까운 ‘맛집’이 느는 요즘, 어르신들과 함께 소박한 집밥을 고집하는 건 모든 사람이 밥 앞에서는 평등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밥그릇 뚜껑을 열자마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구수한 향이 퍼졌다.

메뉴 산나물밥 6천원, 고춧가루 제육볶음 8천원, 참명란비빔밥 8천원
운영시간 11:00~15:00, 17:00~21:00
주소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5길 9-16
문의 02-6268-0778


엄마 손맛이 담긴 밥상, 오씨솜씨




서촌 골목길에 터를 잡은 소박한 밥집


그날그날 가장 싱싱한 재료를 담아내는 밥상


오씨솜씨의 솜씨를 맛볼 수 있는 장 소스

엄마가 해준 밥은 언제 먹어도 따뜻하다. 딸은 엄마가 해준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도시락도 늘 예쁘게, 정성껏 싸준 엄마다. 손맛 좋은 엄마는 음식이란 조미료 없이 좋은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엄마의 요리 철학은 딸에게 이어졌고, 모녀는 서촌에 작은 밥집을 열었다. 버섯·호박·숙주 등 각종 채소를 듬뿍 담아 직접 만든 된장을 비벼 먹는 덮밥, 역시 직접 만든 새콤달콤 양념으로 맛을 낸 쫄면 등 덮밥과 면 요리를 낸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다. 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모양새를 보니 색도, 향도 은은하다. 자극적인 맛에 익숙하다면 첫 맛은 밋밋할 수 있지만, 오씨솜씨의 요리 솜씨는 한 그릇을 비워내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먹는 걸 좋아해서 맛집을 찾아다니다 보니 ‘이건 아닌데’ 싶은 요리가 있더라고요. 제가 먹고 자란 엄마 밥처럼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 시작했어요.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한 음식이요.” 요리는 무엇보다 베이스가 중요하다고 모녀는 생각한다. 요리에 들어갈 간장·된장은 매주 담고, 육수도 종일 끓인다. 조미료나 첨가물 없이도 맛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재료 산지가 다르면 음식 맛이 달라지고, 느타리버섯이라고 다 같은 버섯이 아니더라고요. 어떤 걸 골라야 질기지 않고 쇠고기 맛이 나는지, 이젠 알아요.” 좋은 재료를 찾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산지에서 갓 올라온 재료는 당일 빠르게 요리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도 시간이 흐르고 사람 손을 거칠수록 건강함을 잃는다. “오징어덮밥이라고 이름 붙였으면 당연히 그날 가장 맛있고 싱싱한 오징어를 써야 해요. 내 식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하고요. 밥집을 운영한다면 기본적으로 이런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마음가짐은 편하지 않다. 수고롭고 번거로울 때도 있다. 하지만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을 보면 밥집 차리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2년 넘게 서촌에 머물며 모녀에게는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단골 손님이 가게 앞을 지나면 뛰어나가 인사를 나누고, 밥 먹는 자식 보듯 혼자 온 단골 손님을 챙기는 모녀의 모습은 매일 가족을 위해 밥을 짓던 엄마를 닮았다. 따끈한 밥을 차려내며 오늘 하루를 묻는 엄마가 서촌에 있다.

메뉴 야채된장소스덮밥 7천원, 오징어덮밥 7천5백원, 솜씨 쫄면 6천5백원
운영시간 11:30~20:30, 월요일 휴무
주소 서울시 종로구 옥인길 32-3
문의 02-6212-4028


직접 만든 재료로 맛을 내다, 가족식탁


새벽부터 준비해 종일 아내와 함께 만드는 밥상




만드는 이의 몸이 고되고 세월에 묵을수록 빛을 발하는 천연 조미료들

몸에 좋은 음식을 고민하는 신현만 대표가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가족식탁’은 10년 넘은 약된장으로 끓인 찌개, 효소 간장에 재운 삼겹살 숯불구이 등 직접 만든 재료로 맛을 낸다. 아빠의 하루는 아침 일찍 시작한다. 요리에 쓸 재료와 양념을 손질하고 준비하는 시간이다. 제대로 짓는 집밥은 출발부터 다르다고 생각하는 아빠는 소금 하나도 그대로 쓰는 법이 없다. 물로 불순물을 씻어낸 뒤 2시간 이상 굽고, 고춧가루는 덖은 후 일주일간 숙성시켜 풋내를 없앤다. 23년 된 조선간장은 8시간 중탕을 거쳐 가족식탁만의 맛간장을 만든다. 이렇게 직접 만드는 천연 조미료만 스무 가지가 넘는다. 여기에 건어물과 채소, 약재를 넣고 끓인 육수까지 준비해야 그날 요리를 시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데, 이 정도 준비도 안 하고 요리할 수 있나요? 요리사 몸이 힘들수록 손님은 즐거워요. 요리사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다 만들어야지, 일부라도 만들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팔아선 안 돼요.” 아빠의 요리 원칙은 확고하다. 가족식탁을 찾은 아이들이 된장·청국장도 곧잘 먹는 모습을 보며, 자신 역시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음식만큼은 반드시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 역시 조미료 알레르기가 있어 두피까지 발진이 일어나는 체질인지라 건강한 밥이 우리 몸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건강한 밥의 출발은 좋은 재료와 양념이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3박4일 식재료 여행을 다녀왔어요. 산지마다 식재료를 눈으로 확인하고, 좋은 재료를 발견하면 사오기도 하고요.” 돼지고기를 제외하고 메뉴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국산만 쓴다. 전통 장이 몸속 독소를 빼내는 역할을 하듯 우리 몸엔 우리 식재료가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10년 된 약된장과 5년 된 조선된장 등 가족식탁의 비기와 같은 장은 대부분 노모가 오랜 시간 지켜온 귀한 재료다. “어머니 요리 솜씨가 좋았어요. 동네 잔칫집마다 불려 다니셨는데, 요리 마지막에 간 보는 역할을 주로 하셨죠.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요리가 많아요.” 얼마 전, 가족식탁을 찾은 어머니는 아들이 만든 음식을 드시고 “참 잘했다. 이제 마음 놓을 수 있겠다”며 아들의 노력을 인정해주셨다. 당연한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 세상에서 아빠는 어머니가 해주던 집밥을 기억하며 오늘도 요리를 시작한다.

메뉴 차돌박이 10년 약된장찌개 1만원, 고추장·간장 삼겹살 숯불구이 9천원
운영시간 11:30~15:00, 17:00~22:00, 일요일 휴무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독막로15길 13-4
문의 02-322-0422


사진 신국범 윤세은(자유기고가)

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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