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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리의 멋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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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라는 말에는 발랄함과 경쾌함이 담겨 있다. 매일 오가는 등원길에서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묻어나고, 종종 들르는 놀이터에서는 한 뼘 더 자란 아이를 발견한다. 때로는 꽁꽁 숨겨둔 아지트에 가서 아이와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나들이가 일상에 활력을 준다는 세 가족 이야기.


지안(만 7세), 정우(만 5세) 엄마 이나연
아이를 발견하는 힘



생후 17개월에 막 걸음마를 뗀 정우는 그로부터 딱 한 달이 지난 생후 18개월부터 나들이 인생을 시작했다. 15개월 터울 누나와 함께 엄마 손에 이끌려 미술관에 간 것을 시작으로, 누나 지안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금은 어엿한 나들이 베테랑이 되었다. “첫 나들이는 엄마인 저의 기분 전환을 위한 미술관 전시 관람이었어요. 제가 보고 싶은 전시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죠. 나들이가 익숙해지면서 2~3일에 한 번은 꼭 나가 놀아요. 주말에는 아빠까지 합류해서 더 열심히 놀고요.” 나들이 장소는 엄마가 정하고, 노는 방식이나 시간은 아이들이 주도한다. 색연필이나 크레파스, 마스킹테이프나 가위 등을 담아둔 에코백을 하나씩 챙기지만, 아이들은 열심히 뛰고 매달리고 관찰한다. 엄마는 그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아이들 질문에 응답해줄 뿐이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잘 놀고, 때때로 새로운 면모를 보여 엄마를 놀라게 한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죽은 새를 땅에 묻어줬다는 거예요. 지안이가 발견했는데 묻어주자고 제안했대요. 우리 딸은 감정이입을 잘하거든요. 새를 만지고 흙을 덮어주는 건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정우가 했을 거예요.” 엄마 이나연 씨는 본 적도 없고 일러준 적도 없는 일을 아이들이 해낸 것이 대견해 “잘했다”고 칭찬했다. 예상치 못했던 아이들의 이런 행동은 나들이를 통해 스스로 터득한 것이라 믿는다. “어른이 발견했다면 만지지 못하게 했겠죠. 어른들의 선입견과 편견이 아이가 가진 순수함과 자율성을 닫히게 하는 건지도 몰라요. 자유롭게 뛰어놀고 경험하면서 아이 스스로 배운다는 게 나들이의 진짜 매력이에요.”



지안ᆞ정우네 아지트, 선릉과 정릉
지안이가 수영장 갈 때 지나는 길목에는 ‘서울선릉과 정릉’이 있다. 높다란 빌딩이 빼곡한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이곳은 빌딩 숲에 사는 아이들이 초록빛 숲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집 근처에 있어도 자주 들르지 못하지만 소중한 문화재이기도 하고 자연과 더불어 나들이할 수 있어 종종 찾는다. “평지와 구릉을 오가는 오솔길이 있어 아이와 걷기 좋아요. 이곳의 꽃과 나무는 왠지 잘생겨 보이죠. 벤치도 많아서 걷다가 힘들면 자리를 잡고 쉬거나 그림을 그리며 놀 수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도, 즐기는 법도 달라지고 있네요.” 오솔길을 걸으며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줍고, 수도꼭지를 찾던 아이들은 훌쩍 자라 “여기가 누구 무덤이었더라?”라며 질문을 던진다. 왕릉으로 이어지는 길에 영혼이 오가는 길인 ‘신로’와 왕이 오가는 길인 ‘어로’가 있다는 것도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선ᆞ정릉을 나들이한 지안이는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색연필로 동행들을 그려줬다. 기차를 그리고 싶다던 정우는 작은 스케치북을 이어 붙여 기다란 기차 그림을 완성했다. 엄마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과 연한 초록빛을 띤 나무숲을 보며 잠시 쉬었다. 나들이는 당초 계획보다 조금 길어졌다.



나들이 파트너를 소개합니다
이나연 아이와 가기 좋은 곳, 하기 좋은 정보를 모으고 소개하는 육아 정보 앱 ‘리틀홈’ 대표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그 경험을 통해 아이가 가진 재능을 발견하는 건 엄마 몫이라고 믿는다. 인스타그램 @littlehome_nayeon
김지안 수줍음 많지만 애교 많은 동생을 잘 챙기는 의젓한 초등학교 1학년. 사람은 물론 동물ᆞ식물 등에 곧잘 감정이입을 한다.
김정우 애교 많고 15개월 터울 누나랑 노는 걸 좋아한다. 수줍음은 많지만 스스럼없이 행동한다. 그리거나 만들고 싶은 게 있으면 스케치북을 이어 붙이고 세워서 만들어낸다.


광렬(생후 25개월) 엄마 노혜정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소한 즐거움



생후 25개월 광렬이는 서울시 종로구 누상동에 산다. 주요 나들이 코스는 ‘서촌’이라 불리는 동네로 고층 아파트보다 단층 한옥, 좁은 골목이 어우러진 곳이다. “흔히 경복궁 서쪽 동네를 ‘서촌’이라 일컫는데, 주민들은 누상동ᆞ누하동ᆞ 옥인동ᆞ효자동ᆞ청운동 같은 동네 이름을 그대로 불러요. 어릴 적 뛰어다니던 좁다란 골목이 있고, 오래 거주한 어르신들이 잘 가꾼 화단이 많아 나들이 기분을 내기 좋죠.” 노혜정 씨와 광렬이의 나들이 차림은 간소하다. 필름 카메라와 수첩, 아이 목에 둘러줄 수건 등을 담은 에코백과 휴대용 유모차가 전부다. 가뿐한 차림새의 두 사람은 낯선 골목을 기웃거리며 매일 새로운 풍경을 만난다. 길을 걷고 걷다가 경복궁 반대편 동네인 삼청동까지 간 적도 있다. “골목 나들이는 익숙한 듯 편안하지만 언제나 새로워요. 매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아이에게는 더욱 그렇겠죠. 어떤 날은 화단에 가득 핀 꽃이 예뻐 한참을 머물고, 어떤 날은 한옥집 문고리를 만지작거려요. 매번 새로운 걸 발견하는 아이를 발견하는 감동이 있어요.” 엄마는 꽃을 좋아한다. 임신과 육아 때문에 꽃을 사러 갈 여유가 없어서 동네 꽃집에 1주일 단위로 꽃을 부탁할 정도다. 친정엄마 덕분에 꽃을 좋아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 엄마는 꽃과 나무 이름을 잘 아는 외할아버지 덕분에 꽃을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대를 이은 꽃사랑은 광렬이에게도 이어졌다. 나들이하다가 골목 어귀나 화분에 핀 꽃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까이 가서 만져보고 향기를 맡는다. 엄마는 꽃을 사랑하는 아이가 나들이를 통해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고, 주변 환경을 아끼며 누구나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건강하고 따뜻한 나들이, 두오모와 숙희
두 사람의 나들이길에는 이웃들의 따뜻한 인사가 함께한다. 느리지만 씩씩하게 걷는 아이를 만난 동네 어른들은 아이에게 다가가 ‘예쁘다’ 인사하고, 단골 가게 주인장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효자동 맛집으로 알려진 이탤리언 가정식 레스토랑 ‘두오모’에는 광렬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이의 첫 나들이 장소인데다 지금도 자주 찾기 때문이다. “1주일에 2~3번 찾을 정도로 단골이었어요. 아이를 낳고 이 집 파스타가 너무 먹고 싶어서 생후 50일 된 아이를 품고 달려갔죠. 언제 가도 건강한 맛을 즐길 수 있고, 늘 따뜻하게 반겨줘서 참 좋아요.” 최근에는 두오모 옆 작은 골목 끝에 자리한 ‘숙희’에 자주 간다. 핸드메이드 오브제를 만드는 노혜정 씨의 개인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인 숙희와 인연을 맺어 패턴 패브릭을 활용한 모빌과 인형을 만든다. 육아 스트레스를 풀 겸 시작한 소소한 작업 덕분에 이어진 인연을 만나는 즐거움은 나들이의 덤이다.



나들이 파트너를 소개합니다
노혜정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소재로 핸드메이드 오브제를 만든다. 아이와 걸어서 경복궁 주변 골목을 나들이하는 걸 좋아한다. www.hejj.kr, 인스타그램 @hejj_nohhyejung
김광렬 엄마와 나란히 걷기를 즐기는 생후 25개월 얌전한 남자아이. 계단을 좋아해서 수성동 계곡으로 가는 돌계단을 제 발로 오르고, 꽃을 좋아해 화단에 꽃이 피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세은(생후 35개월) 엄마 전미진
우리가 함께라는 깨달음



달리는 자동차 창문 틈으로 새어 드는 바람을 맞으며 세은이가 말했다. “엄마, 바람이 인사해요.” 생후 30개월이 되어서야 몇 마디 할 줄 알게 된 아이가 이렇게 시적인 표현을 하다니. 아이는 나들이하다가 “구름이 소풍 갔나?”같이 엄마를 감동시키는 표현을 뜬금없이 내뱉는다. 출산 직전까지 꽃이 예쁘게 핀 곳을 찾아다니던 엄마의 ‘꽃 태교’ 덕분일까? “매일같이 우리나라 곳곳에 숨은 꽃동산을 찾아 다녔거든요. 양귀비꽃이 만발한 부천에 다녀오자마자 진통이 시작되더라고요. 생후 50일 된 아이를 품고 다시 나들이를 시작한 걸 보면 ‘꽃나들이병’ 중증이죠.” 꽃을 좋아하고 사진 찍기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세은이의 성장 과정은 꽃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생후 12개월까지 찍은 사진을 모아서 사진첩으로 만들었는데, 지금도 가끔 사진첩을 꺼내본다. “아기띠에 매달려 있고 걸음마를 겨우 떼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걸 보면 신기하죠. 아이도 사진첩 보는 걸 좋아해서 다시 찾아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와 함께 저도 자란다는 생각이 들어요.”



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강원도에 눈이 내린다는 소식이 들리면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1주일에 세 번씩 강원도로 넘어가고, 꽃 소식이 날아들면 어디든 달려가는 열혈 엄마는 아이와 나들이할 때 나름 기준이 있다. 첫째, 꽃과 식물 등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장소일 것. 둘째, 아이가 걷기 편한 길일 것. 마지막 조건은 꽃과 나무 외에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오리나 토끼 같은 동물이 있을 것 등이다. “제가 사는 용인 주변에는 아이와 나들이할 만한 장소가 많아요. 분당중앙공원은 벚꽃이 예쁘고, 분당호수공원은 가을이면 댑싸리가 붉게 물들죠. 수원 농대는 은행나무 숲이 좋은데, 아이가 놀 만한 공간이 충분해요. 숲 속의 도서관도 있고요.” 전미진 씨는 자연을 알면 알수록, 많이 접할수록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자연을 보는 시야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세은이는 꽃을 먼저 발견하고 말을 걸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매일 지나는 집 앞 보도나 동네 도서관 앞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순간을 아이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죠.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갖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길 바랍니다.”



나들이 파트너를 소개합니다
전미진 예쁜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열혈 포토그래퍼 엄마다. ‘사진발’ 잘 받는 공간을 찾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곳이 건설현장 공터, 지하철역 앞, 집 앞 보도일지라도. 인스타그램 @dasom_
박세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꽃을 보고 자라서인지 남다른 감수성과 표현력을 가진 생후 35개월 여자아이. 낮에는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하고 오후 7~8시면 탁 쓰러져 자는 덕분에 수면 교육을 한 적이 없다.

사진 한수정, 이지아 사진제공 전미진 한미영 기자

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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