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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도 잘 뛰어 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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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게만 보았던 숲은 최신 장난감보다 변화무쌍했다. 목련 나무 아래서 베어 문 당근은 달큰시원했고, 잡풀이 덩거칠게 자란 땅은 소파처럼 폭신했다. 매일 숲에서 뛰어 논다는 노아자연학교 아이들을 따라 김미례 원장과 정발산 숲에서 하루를 보냈다. 보고 있으려니 아이가 꽃인지, 꽃이 아이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 뿡뿡! 황금똥을 누는 아이들
숲이 맨 처음 주는 선물은 황금똥이다. 숲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자신의 똥이 황금색이 되었다는 것에서 변화를 체감한다. 선생님들은 생리통이 없어지거나 변비 탈출을 경험키도 한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미세 먼지가 허락하는 날은 매일 숲에서 뛰놀고 아토피를 유발할 수 있는 육류와 생선, 유제품을 먹지 않은 결과다. 하루를 고스란히 숲에서 보내는 아이들의 일상은 어떨까? 볕도 좋았던 봄날, 노아자연학교 아이들을 따라가봤다. 안전수칙에 따라 자전거를 피하고 갑작스레 등장한 강아지의 유혹까지 떨쳐낸 아이들은 흩날리는 벚꽃 잎을 잡으려 손뼉을 치며 숲에 당도했다.



준비운동을 마치자 아이들이 팝콘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땀을 빨빨 흘리며 돌덩이를 옮기고 땅을 팠다. 쓰러진 나무둥치를 긁어댔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쥐며느리가 몸을 동그르르 말고 등장하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엇이든 만져보고 싶은 본능을 가진 아이들에게 몸집이 작고 느린 곤충은 ‘그냥 징그러운 벌레’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신비로운 생명체다. 이 귀한 손님을 그냥 보낼 리 없다. ‘공벌레에게 집을 지어주자’는 마음은 같았지만 득달같이 땅을 파는 아이, 되작거리며 돌을 옮기는 아이, 가만히 관찰하는 아이, 고주리미주리 조언하는 아이, 분쟁을 조정하는 아이 등 스스로 역할을 선택해 몰입했다. 노아자연학교 김미례 원장은 “숲놀이는 아이들의 순간적인 영감과 자발적인 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어른들은 아이들의 능동적인 도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속삭였다.






“숲에 오면 항상 땅을 파는 아이가 있었어요. 위험한 일도 아니니 말리지 않았죠. 1년쯤 지나니까 아이 몸 크기만 한 구덩이가 만들어졌어요. 아이는 그 안에 쏙 들어가더니 ‘아! 됐다~’ 했어요. 그다음부터는 땅을 파지 않더군요. 어른들 눈에는 아이들 놀이가 의미 없는 일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잘 관찰해보면 각자 최선을 다해서 놀고 있습니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문제가 생기면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수없이 도전해요. 자신의 몸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경험하는 겁니다. 곧 보실 테지만, 숲에서는 모든 아이가 천재예요.”



✎ 걱정 말고 숲
숲은 아이와 같았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벚꽃이 우수수 떨어지더니 슬금슬금 거미와 민달팽이가 마실을 나왔고, 공벌레는 몸을 공처럼 굴려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예측할 수 없는 숲의 변화에도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나무뿌리를 뛰어넘고 돌을 나르고 긴 수렁을 차례로 걸었다. 바람에 실려 온 꽃향기에 웃음 짓다가도 새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얼음’ 상태가 되기를 연거푸.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저자이자 자연교육 전문가인 아이카와 아키코는 “한 살 두 살 아이들은 시각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몇 미터밖에 되지 않는 좁은 시야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어른들이 멀리 있는 바다와 거대한 동물, 숲의 경치에 감탄할 때 아이들이 자신의 발밑을 지나는 벌레와 바람, 흔들리는 풀과 꽃에 시선을 빼앗기는 이유도 그래선가 보다. 김 원장도 “아이들은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기 때문에 어른들보다 새소리를 더 잘 듣고, 신기하리만치 벌레를 잘 찾아낸다”고 말한다.





“숲으로 나가면 아이들은 신이 나는데 부모님들은 걱정이 앞서요.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가장 많이 하시죠. 사실 숲에서는 넘어져도 풀, 흙이기 때문에 크게 다치는 경우가 드물어요. 혹여 몸에 상처가 생길지언정 마음의 상처는 없게 키운다는 것이 숲학교 선생님들의 교육 철학입니다. 빨리 가고 싶은 아이는 빨리 가게 두고, 천천히 가고 싶은 아이는 천천히 가도록 기다려줍니다. 목표한 것을 이루는 데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어른들도 유년 시절의 행복한 기억으로 힘든 순간을 버티며 살아가잖아요. 마음껏 행복해야죠.”



숲은 억울하겠다.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안전사고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안전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집’(49.6%)이다. 특히 10대 미만 어린이들은 침대에서 추락해 다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도로 및 인도’(7.7%), ‘숙박 및 음식점’(5.9%) 등이 뒤를 이었다.



✎ 숲은 장난감 없는 유치원
아이 장난감이 제아무리 신상인들, 다양한들 숲에서 만나는 자연물의 다양성에 비할까. 장난감은 그 나름의 기능에 익숙해지면 싫증나고 쉽게 버려진다. 놀이 도구가 아니라 소유로서 장난감을 탐닉하게 되는 악순환을 고심하던 독일의 교육 전문가들은 유럽 최초로 ‘장난감 없는 유치원’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숲은 그 자체로 장난감 없는 유치원이다. 흔하디흔한 자연물로 새로운 놀이를 창조하는 재미는 숲에서 푸지게 놀아본 아이들만 안다. 촉감 놀이만 해도 사계절이 부족하다. 같은 종의 나무라도 신갈나무 잎은 거칠거칠한데 떡갈나무 잎은 보들보들해서 ‘신갈은 신발을 싸고, 떡깔은 떡을 쌌다’는 말도 전해진다. 공벌레를 만지며 생명의 따뜻함과 꿈틀거리는 촉감을 느끼고, 사계절 나무를 타다 보면 나무가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는 것을 배운다. 아이들은 관찰한 곤충을 안전하게 돌려보내주며 생명은 아껴주는 것, 좋아하는 것은 책임지는 것임을 알아갈 것이다.



“매일 숲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섬 같은 애들’이라 일컫는 어른들도 있어요. 교육 전문가로서 보는 숲유치원 친구들은 또래에 비해 자기주도성과 자기조절력, 집중력이 뛰어나요. 네 살 아이도 스스로 겉옷의 지퍼를 올리지 못하면, 안전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숲에 갈 수 없어요. 숲에는 장난감이 없으니 각자 자연물로 자신만의 놀이를 만들어내야 하고요. 공벌레 집을 지을 때는 친구와 힘을 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자신의 행동 패턴을 바꾸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기주도성과 자기조절력을 단련해요. 숲에서는 조금 느린 아이가 신중한 탐험가가 되고, 산만한 아이가 호기심 대장이 됩니다. 자연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잖아요. 집안의 소파보다 숲이 더 친숙하고 편안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숲에서는 부모 역할도 달라진다. 놀이를 주도할 필요도 없고 ‘뛰지 마’ ‘기다려’라고 아이의 활동 본능을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 나무 위로 올라가는 아이한테 내려오라고 명령하는 대신 자신의 몸보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는 오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나뭇가지를 들고 있을 땐 걷고 뛰고 싶을 땐 버린다는 정도의 약속이면 충분하다. 정발산 숲에서 아이들은 약자도, 어른의 소유물도 아니었다. 자연의 일부로서 아이다웠고 각기 달라서 하나같이 어여뻤다.



✓ 안전이 염려된다면 “아이와 손잡고 숲 산책을 해요”
숲에 도착하면 위험한 장소가 있는지 아이와 함께 숲 주변을 산책해보자. ‘여기는 수로가 있으니 조심하자’ ‘이곳엔 턱이 있네’라며 조심해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미리 정해둔다. 부모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아이를 보는 시선이 편해지고, 말투도 부드러워진다. 아이도 부모 잔소리 없이 오래 놀 수 있고, 부모도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아이가 목이 마른지 정도만 봐주면 된다. 단, 벌레가 꼬일 수 있으니 사탕이나 젤리 같은 간식은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다.

✓ 이렇게 놀아요 “숲에서는 단순한 놀이가 재미있어요”
땅에 선 그어놓고 신발 벗어던지기, 토끼풀 화관 만들기처럼 부모가 어린 시절 하던 전통놀이를 숲에서 해보자. 나뭇가지나 솔방울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아이에게 나뭇가지든 돌멩이든 다섯 가지만 주워 오라고 한다. 주워 온 자연물을 던져 동그라미에 안에 넣으면 성공. 무거운 돌멩이는 잘 들어가지만 가벼운 나무껍질은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 숲 예절을 지켜요 “큰소리로 떠들면 안 돼요”
4~5월은 새들이 짝짓기하는 시기다. 음악을 틀어놓거나 시끄럽게 떠들면 새들이 나오지 않는다. 숲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자. 우리는 가끔 찾아가는 손님이며, 숲의 주인은 그곳에 사는 동물과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사진 한수정 김경민(자유기고가)

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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