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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따라 발길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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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민 씨는 여덟 살 딸 재인이와 두세 달에 한 번씩 제주도를 여행한다. 아이와 단둘이 여행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제주도 여행 4년 차 꼬마 아가씨는 오름을 씩씩하게 오르고, 좋아하는 단골 카페가 있으며, 길에서 마주친 우연한 풍경을 감상할 줄 아는 어엿한 여행 파트너다.




배경민 씨의 남다른 제주도 사랑은 재인이가 네 살 때 시작됐다. 비행기를 타고 훌쩍 떠나는 여행 분위기를 느끼고 싶지만, 남편 없이 해외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비행기로 1시간이면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제주도가 떠올랐다. 겁도 없이 비행기에 올라탔지만,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재인이를 꼭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불안한 다음에 재인이에게 “엄마랑 너랑 단둘이 잘 할 수 있을까?” 물어봤는데 “당연하지!”라는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재인이의 밝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편해지면서 여행에 자신감이 생겼다. “4년 전 처음 재인이와 단둘이 떠난 여행이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여행이에요. 차를 타고 해안가를 드라이브하다 마음에 드는 오름이 보이면 내려서 올라가고, 동네의 작은 해변에서 해가 질 때까지 물놀이하고, 매 끼니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여행의 자유를 만끽했어요.”

이날 이후 배경민 씨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 야트막한 집들이 모여 이룬 수평선, 사계절 달라지는 자연의 빛깔까지 제주도의 매력에 풍덩 빠졌다. 평소 사람이 버글버글한 유명 관광지는 질색이지만 섭지코지, 성산일출봉, 용머리해안 등 제주도의 관광 명소들은 모두 갈 만한 가치가 있었다. 화산 폭발로 봉긋 솟아오른 지형인 ‘오름’은 작은 봉우리마다 모두 다른 풍경을 지니고 있다. 제주도는 갈 때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준다.

배경민 씨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딸 재인이와 함께 제주도를 찾는다. 제주도의 숨겨진 풍경, 아이와 가기 좋은 식당 등의 정보를 인스타그램(@ohmyjeju)에서 공유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주도 하면 재인맘, 재인맘 하면 제주도’라는 공식으로 통한다. 아이와 다니기 좋은 제주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 <오마이제주>(장차북스)도 펴냈다. 여덟 살 재인이는 이래 봬도 제주도 여행 경력 4년차, ‘인생의 절반’을 제주도와 함께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곶자왈은 재인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다. 엄마와 딸의 여행을 항상 부러워하는 아빠는 여름휴가나 주말에 틈틈이 동행한다.



✎ 한적하고 여유롭게, 제주도 산책
배경민 씨 가족은 동네 산책하듯 제주도를 여행한다. 길 가다가 경치 좋은 곳을 발견하면 차에서 내려 구경한다. 작고 매력적인 식당과 카페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발견하면 아이와 이야기 나누며 한참 머물다 간다. 더 많은 곳을 보려고 조급해하지 않고, 한곳에 눌러앉아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는 게 이 가족의 여행법이다. 요즘 배경민 씨는 재인이와 단둘이 여행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친한 친구들끼리 가는 여행도 좋지만 서로 배려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할 때가 있어서다. 반면 엄마와 딸은 누구보다 편하고 솔직한 사이다. 풍경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서로 비슷해 놀랄 때도 많다. “재인이가 외동이라 친구네 가족과 여행을 자주 가요. 아이들은 제주도의 넓은 자연에서 뛰어놀고 엄마들은 육아 부담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죠. 하지만 다른 가족과 여행할 때면 어른 아이들이 따로 놀아서 재인이와 대화하는 시간이 부족해요. 몸은 편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소통하지 못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은 친구 가족과 여행을 갔다면 그다음에는 둘이서 여행을 가는 편이에요.”

요즘에는 훌쩍 자란 재인이가 여행 계획도 세운다. “오전에는 바다, 오후에는 숲에 가고 중간에 저번에 갔던 카페에 들르자. 첫째 날은 함박스테이크를 먹고 싶어”라고 똑 부러지게 제안한다. 그러면 재인이의 의견을 반영해서 여행 계획을 세우고, 거리가 멀어서 가지 못하는 곳은 다음에 가자고 말해준다. “재인이가 어릴 때는 제 마음대로 루트를 정했다면, 요즘에는 예전에 갔던 곳을 추억하며 함께 여행 계획을 세워요. 예전에는 재인이를 챙겨야 하는 보호자였다면, 지금은 서로 의지하는 친구 같아요. 제가 길을 못 찾으면 “엄마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라고 용기를 주고, 곶자왈에서는 엄마보다 한참 앞서가며 바닥의 진흙을 조심하라고 알려주기도 해요.”



✎ 여행은 쭉 계속된다
계절마다 제주도를 여행하고, 여행기를 묶어 책도 내자 주변에서 “제주도에서 살고 싶지 않아?”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제주도 생각이 날 때면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부푼다. 하지만 남편의 직장, 주거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여행과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몇 달 전 제주도로 이사간 지인과 함께 곶자왈을 갔는데 지인은 첫 방문이라고 했다. 평일에는 일과 육아로 바쁘고, 주말에는 휴식이 필요해 문만 열면 발길이 닿는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집안에만 있는 것이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배고프면 밥 먹고, 쉬고 싶으면 침대에서 밍기적대고, 드라이브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쉬었다 가며 자유를 만끽하는 거예요. 여행지의 낯선 풍경이 일상이 되고 육아, 집안일 등 책임감으로 물들면 제주도가 지금처럼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 살지 않더라도 별장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건축 비용과 20년간 제주도 여행 비용을 계산해봤다. 그 결과 저가항공권을 이용하고 고급 호텔은 선호하지 않는 재인맘표 여행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별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발품 팔아서 더 즐거운 재인맘표 여행을 계속할 예정이다.





✎ 재인맘 따라 제주도 가기

○ 일정은 길게 동선은 짧게
제주도가 넓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꽤 많다.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이동하는 데 3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유명 관광지를 모두 둘러보려고 욕심 내면 고행길이 될 수 있다. 최소한 5박6일로 여행을 계획하고, 일정이 짧다면 구역 한곳을 정해서 간다.

○ 숙소는 저렴하게
제주도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예쁜 식당, 카페가 많기 때문에 숙소에 있는 시간이 짧다. 가고 싶은 장소와 가까운 숙소를 추리고, 그중에서 가장 깨끗한 곳으로 예약한다. 아이가 어리다면 도미토리 게스트하우스는 피한다.

○ 식당과 카페는 적어도 세 곳씩
제주도의 식당은 사정이 생겨서, 재료가 떨어져서, 바람이 불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근처 식당을 적어도 세 군데 이상 알아두고, 전화로 영업하는지 확인하고 방문한다. 지도에 식당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서 가져가면 거리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 가방에는 언제나 아이 놀거리
제주도 여행은 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부모도 중간중간 카페에 들러 쉴 시간이 필요하다. 카페는 아이들이 가장 심심해하는 공간. 아이에게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으라는 부탁은 가혹하다. 색연필, 컬러링북, 퍼즐 같은 소소한 놀거리를 챙기면 시간을 보내기 좋다.



✓ 재인맘의 나만 알고 싶은 오름
봉긋한 오름과 야트막한 집들이 어우러진 낮은 풍경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제주도는 작은 섬 안에 360여 개의 크고 작은 오름이 있어, 어디나 가까운 곳에 오름이 위치해 있다. 아무리 높은 오름도 3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어 아이와 함께 가기 좋다. 유명하지 않지만 그래서,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오름 세 곳을 소개한다.



낮은 곳에서 만나는 풍경, 아끈다랑쉬오름
오름의 꽃이라고 불리는 ‘다랑쉬오름’ 바로 옆에 ‘아끈다랑쉬 오름’이 있어요. ‘아끈’은 제주도어로 ‘두 번째’ ‘버금가는’의 뜻으로 다랑쉬에 버금간다는 의미래요. 10분 정도 걸으면 정상에 도착하는 얕은 오름이라 아이와 가기 좋아요. 처음 가면 입구가 수풀과 가시덤불로 뒤덮여 있어 제대로 찾아온 건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거친 길을 헤치고 올라가면 눈부신 바다가 펼쳐져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와는 색다른 낮은 풍경의 매력을 느껴보세요.
주소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2593
소요시간 10분 난이도 ★★★


자연의 품에 안기다, 물영아리오름
‘물’ ‘영’ ‘아리’가 합쳐진 단어로 물이 고여 있는 신령스러운 오름이라는 뜻이에요. 무성한 숲과 늪지가 어우러진 풍경이 자연의 거대함을 느끼게 한답니다. 오름 아래 드넓은 목장에는 소를 방목해 키우고, 숲길에서는 노루 가족이 살고 있어 아이가 정말 좋아해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이라 아이에게 자연보호협정이나 지형에 관해 알려줄 수 있어요.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남조로 988-11
소요시간 30분 난이도 ★★★


사계절 다른 매력, 새별오름
새별오름은 계절마다 색깔이 바뀌는 곳이에요. 가을에는 억새가 황금 물결을 이루고, 정월대보름 무렵 들불 축제를 마치고 나면 새까맣게 변해요. 저녁 하늘에 외롭게 떠 있는 샛별 같다고 해서 ‘새별오름’이라고 불려요. 실제 서부산업도로를 달리다 보면 허허벌판에 새별오름이 동그랗게 솟아 있어요. 정상까지 가는 길이 가팔라서 아이가 어리다면 둘레길만 걷는 걸 추천해요.
주소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평화로 1529(주차장)
소요시간 20분 난이도 ★★★★

✓ 오름을 오를 때는
○ 일출이나 일몰 시간에 맞춰서 가세요. 한여름의 오름은 무척 더워서 낮 시간은 피하는 게 좋아요. 여름에는 오후 7시, 겨울에는 오후 4시쯤 방문하면 제주도의 나지막한 풍경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 계절에 상관없이 긴 팔, 긴 바지를 입고 가세요. 숲이라 모기가 많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오름은 가는 길이 험해서 가시덤불에 찔릴 수 있어요. 발목까지 오는 양말을 신고, 모기퇴치제를 뿌리고 가는 것도 좋아요.


참고도서 <오마이제주>(장차북스) 사진제공 배경민 위현아 기자

201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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