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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대가 함께한 프라이부르크 놀이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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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든 도시의 가장 번화한 곳에서, 가장 너른 장소에서 떡하니 놀이터를 만났다. 실컷 놀고 나오면 또 다른 놀이터가 짠하고 나타났다. 환경도시, 생태도시로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놀이터 테마파크다. 3주간 프라이부르크로 놀이터 여행을 다녀와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를 펴낸 이소영 씨 가족을 만났다. 매일 독일 놀이터로 출근해 놀았던 아빠 엄마는 요즘 주말마다 묻는다. “우리 놀이터 갈래?”




(왼쪽부터)
오석진
독일 여행을 통해 아들 바보로 거듭난 시현이 아빠.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혜자다.

오시현 
흙놀이를 좋아하는 다섯살 개구쟁이. 요즘 꿈은 비행기가 되는 것이다.

이유진
시현이 엄마. 어린 시절 안 해본 장난이 없는 골목대장 경력이 화려하다. 사진가이며 플로리스트. 저서로 <처음 하는 꽃 장식> <처음 만드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다.

이소영
윤서ᆞ윤교의 엄마. ‘놀맹’ 출신이지만 엄마가 된 후 놀이의 즐거움을 재발견하고 있다. 미술과 과학의 만남을 다룬 <실험실의 명화>를 펴냈다.

도주옥
두 딸의 엄마이자 세 손주의 외할머니. 매일 8시간씩 글을 쓰는 서예인이며 나무타기 고수다.

허윤서
소싯적 꿈은 농부. 제비꽃 반지도 뚝딱 만드는 열한 살 숲 전문가다.

허윤교 
활달과 새침을 오가는 일곱 살 소녀. 웃음이 많아서 눈물도 많다. 

허진만
윤서ᆞ윤교의 아빠. 암벽등반을 좋아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 아이들이 만들어서 진짜 놀이터
“프라이부르크는 놀이터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관광객이 몰려 있는 광장 한복판에서 불쑥 놀이터를 만나는 식이죠. 놀이터가 만들어지는 방법부터 달라요. ‘전문가’들이 설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콘셉트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마을 주민과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거칠고 투박해도 내가 사는 지역의 바위, 목재 등 자연물로 만들다 보니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프라이부르크에는 160개 놀이터가 있는데 46개가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협력해 자연친화적으로 개조했다고 해요. 땅이 넓어 도심 한가운데 놀이터를 만들고 그 옆에 또 만드는 것은 아닐 거예요. 놀이터와 공원이 주민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가장 좋은 자리, 넓은 땅을 기꺼이 내주는 것 아닐까요?”

비교는 나쁘다지만, 에디터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가 스멀스멀 떠오른다. 가장 인기 있는 그네는 늘 긴 줄이 늘어서서 조금 큰 아이들은 기다리다 지치고, 조금 어린 아이들은 울다 지친다. 미끄럼틀은 대부분 너무 짧거나 딱딱하고 시소는 그냥 덩그러니 시소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란 건설회사에서 판매하는 세트 상품의 일부요, 덤으로 주는 사은품인 까닭일까. 총천연색 컬러로 포장한들 그 부족함이 채워지진 않는다. “독일에서 아이들이 많은 곳만 다녔는데 어딜 가도 소란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왜 그런가 살펴보니 놀이를 마치고 집에 갈 시간이 됐을 때 울고 떼쓰는 아이들이 없었어요. 부모가 오라고 손짓하면 깔깔대던 놀이를 멈추고 순순히 따라가는 거예요. 더 놀라운 건 정말 독일에 있는 동안 우리 아이들도 그랬어요. 여길 지나면 또 다른 놀이터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신나게 놀고 쿨하게 떠났어요.”



✎ 아빠 엄마가 달라지면 놀이터가 바뀐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아이가 행복한지 알아보려거든 그 아이가 노는 놀이터에 가보면 되겠다. 아이의 놀 권리가 지켜지고 있는지, 유해하지 않은지, 이웃과 마음을 나누는 어른들이 사는지, 아이 안전에 관한 정책이 잘되어 있는지 정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니. 3주간 여행하며 가족들이 가장 감탄한 것은 프라이부르크가 본래 ‘환경’과 거리가 먼 도시였다는 사실이다. 공업도시로 키우기 위해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려 하고, 독일 내에서 자동차가 가장 많아 공해가 극심해지자 마을 주민들이 나섰다.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태양광 에너지를 아이디어로 냈고, 그 아이디어가 채택되면서 ‘세계 환경의 수도’라는 결과물을 얻은 것이다.

“환경을 해치지 않고, 아이가 행복한 동네를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토록 다양하고 건강한 놀이터들이 생겨났어요. 내가 사는 동네 이슈를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시장의 업무로만 여기지 않고 주민 스스로 의견을 내고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면 내가 살아가는 동시대에 이렇게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프라이부르크가 가르쳐주었어요. 제초제 없이 자라서 주워 먹어도 되는 풀, 청정한 흙, 실컷 맞아도 되는 비를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어른들의 시급한 숙제일 테고요.” 놀이터를 여행하며 가장 많이 바뀐 건 아빠 엄마들이다. 늘 바쁘던 아빠는 아들과 노는 꿀재미를 체험했고, 장모님은 사위의 곰살맞음을 경험했다. 엄마는 ‘위험해!’라는 말 대신 믿고 기다려주는 연습을 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 아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 자신이 사는 동네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생긴 것이다. 보이는 풍경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어서 가족의 여행은 언제나 옳다.




동물원은 24시간 개방 중 ‘문덴호프Mundenhof’
“입장료도 없고 24시간 열려 있는 동물원이 있다기에 깜짝 놀랐죠. 손주들이 당나귀, 양, 염소, 말, 알파카 등 동물들을 직접 돌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더군요. 동물이 사는 마을에 우리가 잠깐 방문한 것처럼 편안했습니다.” 할머니 도주옥




동심으로 돌려놓는 천년 물길 ‘베힐레Bachle’
“중세부터 이어져온 1천년 된 물길이에요. 대성당을 출발점 삼아 베힐레를 따라 걸으면 구도심 전체를 둘러볼 수 있어요. 아이들은 물장난을 치고 배를 띄우며 놀았고, 어른들은 발을 담근 채 여유로움을 만끽했습니다. 어른도 와락 뛰어들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놀이터였어요.” 윤서ᆞ윤교 엄마 이소영




언제나 새로운 친구를 기다리는 놀이터 ‘룸펠하우젠Rumpelhausen’
“런던의 공공 놀이터는 아이를 데려오지 않은 어른의 입장을 금지하고, 뉴욕은 그런 행위 자체를 범죄로 간주해요. 그런데 프라이부르크 중앙역 뒤편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룸펠하우젠은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재료를 모아 만든 자신들만의 공간이었지만 그 놀이터를 국회 홈페이지에 오픈하고 날짜를 정해 모두에게 개방하고 있었어요. 내 집 앞 놀이터를 바꾸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타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인 것 같아요.” 시현 엄마 이유진




롤러코스터보다 재미있는 미끄럼틀 천국 ‘제파크Seepark’
“긴 미끄럼틀이 세 개나 있는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재미있어요. 세 번이나 갔었는데 또 가고 싶어요. 누워 있는 나무 위에 올라 균형 잡고 흔들흔들 걸으면 정말 재미있는데, 왜 우리나라 놀이터에는 쓰러진 나무가 없을까요?” 윤서




보방 주민들이 만든 아이들 천국 ‘다섯 개의 어금니’
“바구니 그네는 타고 또 타도 재미있어요. 물이 나오는 흙 놀이터가 있어서 정말 신났어요. 한국에서도 봤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못 탔어요.” 윤교 “흙 놀이가 좋아요. 물이 나오는 흙 놀이터에서 맨발로 노는 게 좋아요.” 시현




숲 속 동화의 나라 ‘검은 숲 난쟁이길(Wichtelpfad)’
“숲 이름이 슈바르츠발트. 우리말로 ‘검은 숲’이에요. 30개의 어린이용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난쟁이길을 탐험했습니다. 검은 숲을 경험한 후에야 <헨젤과 그레텔> 같은 동화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나라마다 자연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윤서ᆞ윤교 아빠 허진만

“숲의 분위기가 낯설었는지 시현이가 ‘업어줘’ ‘안아줘’를 반복했지만 아들과 함께 동화책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 신비로웠어요. 잿빛 깃털을 가진 새 ‘안톤’에게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안톤의 집을 찾아간다는 스토리도 흥미로웠고요. 다시 독일에 온다면 저는 검은 숲으로 향할 겁니다.” 시현 아빠 오석진




할머니 도주옥
“놀이터는 [ 온 식구가 함께 놀아 좋은 곳 ] 이다”

경북 성주 시골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때 나무를 엄청 잘 탔어요. 여행하면서 나무에 한번 올라봤는데 실력이 여전하더라고요. 안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어린 시절 놀았던 경험이 내 몸에 남아 있었어요. 외국 놀이터에는 펌프가 있고 모래가 있었어요. 잊고 있던 어린 시절 풍경을 먼 타국에서 경험하니 신기했습니다. 항상 바쁜 작은 사위와도 여행을 통해 담뿍 가까워진 것도 좋고요.


윤서ᆞ윤교 아빠 허진만
“놀이터는 [ 가족 모두가 해방되는 장소 ] 이다”

“어린 시절 딸들과 놀이터에 가면 차가 불쑥 들어오지 않는지,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진 않는지 좌불안석이라 24시간 아이를 감시했어요. 프라이부르크에 가서야 비로소 ‘안 돼’ ‘위험해’라는 말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어요.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정말 큰 해방감을 주었죠. 새로운 곳에 가면 사진 찍어주느라 노는 아이를 자꾸 불러 세웠었는데, 독일의 부모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최소한의 안전만 챙기더군요. 아이를 간섭하지 않고 촬영 압박에서 벗어나니 저도 아이가 노는 순간들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었고, 그 시간이 휴식처럼 느껴졌어요.”

시현 엄마 이유진
“놀이터는 [ 언제나 가고 싶은 곳 ] 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독일 이민을 알아볼 정도로 좋았어요. 처음에는 기저귀도 안 한 아기가 모랫바닥에서 놀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데, 독일 엄마들도 맨발로, 맨바닥에서 평화로운 휴식을 즐기더라고요. 역시 아이를 바꾸려면 엄마가 먼저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아요. 아이를 간섭하지 않는 독일 엄마들을 보며 저도 ‘하지 마’라는 말을 줄이니까 아이가 더 편안하게 놀았고, 저를 안 찾으니 쉴 수 있었어요. 사실 매일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주말에 아이와 어디를 가겠다고 하면 불안한 마음이 앞섰는데, 여행 이후 남편과 아이가 절친이 돼서 든든하고 기뻐요. 일에 묻혀 살던 남편이 놀이터에서 아이처럼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며 남편의 여러 면을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시현 아빠 오석진
“놀이터는 [ 진짜 아빠로 변신하는 곳 ] 이다”

“아이와 3주 동안 24시간을 함께하고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늘 바쁜 탓에 시현이와 서먹했었거든요. 피곤한 이유도 있었지만 놀아주는 방법을 몰라서 더 회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놀이터에서 함께 놀다 보니 어느 순간 아들이 저를 정말 사랑스럽게 바라보았어요. 그때부터 제가 더 신이 났죠.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요즘도 아이 손을 잡고 자꾸 놀이터에 나갑니다. 일도 좋지만 일상을 활기 넘치게 살자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8년 전에도 독일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번 여행은 가족과 함께여서, 제가 아버지여서 더욱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윤서ᆞ윤교 엄마 이소영
“놀이터는 [ 나의 인생관을 바꿔준 공간 ] 이다”

수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그런데 밥벌이를 위해 매일 서울로 출근하는 삶을 살았어요. 프라이부르크를 여행하며 ‘나도 내가 사는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노후 대책이 아닐까요? 아이들 대학과 직장도 서울만 고집하지 않으면 어릴 때부터 안달복달 키우지 않아도 될 거고요. 이미 잘사는 도시에 숟가락 하나 얹지 않고, 나의 힘으로 내가 사는 고장을 바꿔보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그래서 마을 환경에도 관심을 갖고 소소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자칭 ‘놀맹’ 엄마였지만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도 시작했어요.


사진 한수정, 이유진(<엄마도 행복한 놀이터>(오마이북)) 진행 김경민(자유기고가)

201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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